"비어있어 아름다운 慶州, 왜 자꾸만 채우려는지…"

입력 2015.06.08 03:00

[승려들과 나눈 대화 모아 산문집 펴낸 소설가 강석경]

"예술서 자아 찾는 내 모습, 수행자들 절에 간 이유와 닮아"
승려의 모습, 출가 전후로 나눠 서정적이고 정갈한 문체로 그려

"여기는 가을에 일몰(日沒) 때 오면 제일 좋아요. 경주는 비어 있기 때문에 고도(古都)이고, 그게 경주의 아름다움이 아니겠어요. 그런데 황룡사를 복원한다며 자꾸 채우려고 해요."

소설가 강석경씨가 경주 황룡사지의 빈터를 돌아보며 안타까워했다. 강씨는 황룡사 목조 9층탑이 서 있던 자리에서 1000년 넘게 햇빛과 달빛을 받고 비바람에 씻긴 초석(礎石)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경주시는 2025년까지 '신라 왕경 복원' 사업을 벌이며 황룡사를 비롯해 8곳을 재현하기로 했다. 그러나 강씨는 "비어 있는 경주가 상상력을 자극해서 더 좋은데, 복원을 한다며 오히려 더 망쳐놓지나 않을까…"라며 걱정했다.

경주 황룡사지(皇龍寺址)를 찾은 소설가 강석경씨는“부처님오신날엔 사람들이 분황사에서 연등을 들고 나와 황룡사지를 한 바퀴 돌기도 한다”며 1000년 넘게 이어지는 불심(佛心)을 강조했다.
경주 황룡사지(皇龍寺址)를 찾은 소설가 강석경씨는“부처님오신날엔 사람들이 분황사에서 연등을 들고 나와 황룡사지를 한 바퀴 돌기도 한다”며 1000년 넘게 이어지는 불심(佛心)을 강조했다. /김종호 기자
대구에서 태어난 강씨는 1974년 등단해 서울에서 오래 활동하다가 1990년대 초 두 차례 인도 기행도 다녀온 떠돌이였다. 그는 1994년부터 경주에 터를 잡고 붙박이 작가처럼 글을 써왔다. 경주의 고고학 발굴을 뼈대로 삼은 장편 소설 '내 안의 깊은 계단'을 발표했다. 경주를 음미한 산문집 '능으로 가는 길'과 '이 고도를 사랑한다'도 냈다. '불국토(佛國土)'였던 곳에서 살기에 불교에 심취해 전국 사찰을 돌아다니며 승려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 기록을 모아 최근 산문집 '저 절(寺)로 가는 사람'(마음산책)을 냈다. 수행자들이 '저 절'로 스스로 간 까닭을 탐구한 책이다.

강석경씨는 "젊었을 때부터 소설을 쓰러 절에 가곤 하면서 스님들에게 동질성을 느꼈어요"라고 말했다. "문학은 '오디세우스'가 그랬듯이, 결국 진정한 자기로의 귀환이잖아요. 스님들의 구도(求道)도 그와 같지 않은가요. 예술과 종교는 방법만 다르지 같은 길을 걷는 것이에요."

예술을 '세속에서의 구도'로 여기는 작가는 불교에서 숭고한 예술의 미학을 느껴왔다. "가사를 걸친 승려들이 수없이 엎드려 지고한 존재 앞에 경배하는 의식과 세속에서 박차 오르는 듯한 염불 소리…. 지상의 것 같지 않은 열락의 광경은 그날부터 내 의식에 붙박였다"는 것. 작가는 통도사·송광사·해인사·화운사·불국사·분황사를 즐겨 찾았다. 불교의 가르침과 승려들의 삶을 작가의 눈으로 포착했다.

한 승려의 출가를 묘사하면서 '머리를 깎일 때 누군가 가려운 등을 긁어주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적었다. 세속의 번뇌에서 벗어나는 순간을 소설가의 감각적 문체로 그려냈다. 송광사에서 작가는 '법당에 들어오면 무릎 꿇고 자리에 앉은 채 한 손으로 가사를 밑으로 당겨 발을 가리던 스님들의 정갈함'에 절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기에 작가의 문체도 정갈하다. 사찰을 둘러싼 자연 묘사는 서정적이고, 승려들과의 대화는 담백하고, 경전 인용도 깔끔하다.

이 책은 고승(高僧) 열전도 아니고, 불경(佛經) 해설도 아니다. 취재한 승려들의 출가 이전과 이후를 두루 묘사하면서 승(僧)과 속(俗)을 넘나든다. 책에 등장하는 승려들은 참선(參禪)에 빠지기만 하지 않는다. 절의 살림을 맡은 승려이거나, 인도와 미국 유학도 다녀온 학승(學僧)이거나, 탱화를 그리는 예술가 승려다. 그들은 죽음 앞에서 초연한 수행자들이지만, 도반(道伴)이 입적할 땐 '정(情)' 때문에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이 책에서 한 승려는 "이치만 알아서는 냉혈이 돼요"라며 "이치도 알고 감정도 풍부해야 자비가 생겨요"라고 말했다.

강석경씨는 "지금껏 사찰에서 취재한 것을 토대로 구도 소설을 쓸 것"이라며 "예술가 소설과 불교 소설을 결합한 작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경주 황남동 대릉원(大陵園)의 신라 고분 옆에 우뚝 선 메타세쿼이아를 가리켰다. "저는 저 나무가 겨울에 나뭇잎을 다 떨군 모습을 좋아해요. 본질만 남은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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