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그 작품 그 도시] 그림 같은 풍경도 한때, 텃밭 가꾸기도 벅차다

조선일보
  • 백영옥·소설가
입력 2015.06.06 03:00

에세이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일본의 어느 시골

마루야마 겐지를 인터뷰한다는 선배의 말에 간만에 겐지의 책이나 한번 읽어볼까 싶어서 별생각 없이 집어든 책은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였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점점 당혹스러웠다. 얼마 전 제주도 정착을 결심하고 고향 부산에서 짐을 뺀 친구나, 경주에서의 새 삶을 시작한 후배에게 권해주면 어쩐지 한 대 맞을 것 같은 이 책의 소제목은 대략 이렇다.

에세이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일본의 어느 시골
일본의 한 시골 마을 언덕 비탈을 따라 꽃이 만발해 있다. 마루야마 겐지의 에세이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는 48년째 귀농 생활 중인 작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낭만적인 귀농을 꿈꾸는 도시인들에게 시골 생활의 만만찮음을 알려주는 책이다. 이 에세이를 읽은 백영옥은 “마을 전체를 하나의 집, 하나의 가족으로 보는 것으로 혹독한 환경에서 비롯된 삶의 여러 문제를 이겨왔던 시골 특유의 문화를 간과한다면 이제까지 자신이 도시에서 구축한 세계가 무너질 것이란 경고는 새겨들을 만하다”고 했다. /픽사베이

·경치만 보다간 절벽으로 떨어진다.

·풍경이 아름답단 건 환경이 열악하다는 뜻이다.

·텃밭 가꾸기도 벅차다.

·친해지지 말고 그냥 욕먹어라.

·시골에 간다고 건강해지는 건 아니다.

·구급차 기다리다가 숨 끊어진다.

·깡촌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심심하던 차에 당신이 등장한 것이다.

과연 '소설가의 각오'를 쓴 마루야마 스타일이 아닌가. '소설가의 각오'의 소제목에는 그가 가지고 있는 온갖 신념과 편견이 가득하다. 가령 '여자나 게이에게 인기 있으면 끝장이다'라든가 '자기 힘으로 일해서 먹고살지 않는 남자와는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일본 독자들은 유치한 잡지를 좋아한다' 같은 말들.

하지만 시골이 고요하리라는 믿음부터가 착각이라는 말은 새겨들을 만하다. 전원 지대가 조용할 때는 농한기뿐이고, 그 외 계절은 온갖 농기계가 내는 엔진 소리로 더 시끄럽다는 것이다. 사실 고요한 가운데 발생하는 소음은 훨씬 더 자극적이지 않은가. 그의 말은 변산 공동체를 운영하던 윤구병 선생의 '잡초는 없다'에서 내가 본 한 장면을 유독 떠오르게 했다. 검정 비닐을 씌워 키우는 작물이 많은 시골에선 비가 내리면 유독 더 시끄럽다는 것이다. 시골에서 내리는 빗소리가 '낭만'이 아니라 '소음'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 나는 꽤 큰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생활 환경이 가혹하다는 의미입니다. 바다도 산도 숲도 강도 그것이 아름다울수록 일단 비위를 건드렸을 때에는 본색을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혹독하고 위험하기 때문에 그림 같은 풍경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대대로 자연 속에서 산 시골 사람들은 희생을 거듭한 덕에 자연의 위험성을 온몸으로 체득해 살지만, 도시인들은 그것에 무지해 재해를 입을 위험성이 크다. 특히 전망이 좋은 고지대에다 햇볕이 잘 드는 경사진 남향이라는 부동산 중개업자의 말에 홀려 집터를 선택했다가 어처구니없는 참극에 휘말리기도 한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그래도 나는 시골에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하지만 이 책을 넘기다 보면 시골에 정착해 살기 시작한 사람이 겪게 되는 가장 구체적인 애환들이 나열된다. 가령 자신의 텃밭에서 키운 첫 채소를 식탁에 올린 감격에 가득한 초보 정착민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기라도 한 듯한 이런 말.

"우선 너무 많이 거둔 야채가 고민거리가 됩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수확해야 하는 일에 진절머리가 나고 말 것입니다. 소금에 절이고 된장찌개에 넣고 다른 것에 곁들여도 다 먹어치울 수가 없습니다. 도시라면 가까운 이웃에게 나눠줄 수라도 있을 텐데 주변이 죄다 농가이다 보니 아까워도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쯤 되면 오기가 나서라도 여러 야채를 소량으로 키우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그는 야채마다 물의 양이며 잘 맞는 흙, 일조량이 전부 달라서 한 밭에서 키울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실제 자신이 그것을 시도했다 실패해본 사람처럼 말이다.

"시골은 인구가 적어 시골 사람들은 늘 변화와 자극에 굶주려 있습니다. 그들은 지역 주민 모두의 성장 과정부터 최근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시시콜콜 다 꿰뚫고 있습니다. 그러고도 무료하기 짝이 없는 일상인데, 마침 당신들이 나타나 순식간에 좋은 먹잇감이 됩니다."

마을 전체를 하나의 집, 하나의 가족으로 보는 것으로 혹독한 환경에서 비롯된 삶의 여러 문제를 이겨왔던 시골 특유의 문화를 간과한다면 이제까지 자신이 도시에서 구축한 세계가 무너질 것이란 경고는 새겨들을 만하다. '너와 나'의 경계가 없어진다는 건 종종 내가 너를 침범하겠다는 뜻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말 없이 불쑥 집에 방문한다거나, 사적인 질문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공포가 될 수도 있다는 경고다.

특히 나처럼 '숲속의 삶'에 환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숲으로 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가더라도 이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우선은 습도가 높은 점에 놀랄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햇볕이 잘 들지 않는 데에 원인이 있습니다. 빨래가 잘 마르지 않는다. 이불이 마르지 않는다. 곰팡이가 슨다. 진드기 퇴치에 애를 먹는다. 한밤중에 나무 위를 날아다니는 날다람쥐 울음소리가 완전히 요물이 절규하는 소리로 들려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음식 쓰레기 맛을 본 곰이 어슬렁거려 겁이 난다. 야생 원숭이가 주방을 마구 어지럽힌다. 이런 점들도 걱정이지만, 가장 겁나는 것은 화재가 일어났을 때입니다. 전원 지대와 달리 불이 나무들을 잽싸게 타고 와 순식간에 번집니다. 시골에서는 소방차가 적어 큰 화재가 발생하기 쉽습니다."

에세이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일본의 어느 시골

마루야마 겐지는 1968년 '정오이다'를 쓴 후 시골로 내려가 지금까지 살고 있다. 시골 생활이 48년째이니 시골 전문가인 셈이다. 이 책은 '슬로 라이프' '킨포크적인 삶' 같은 말에 솔깃해 도시에서 시골로 무작정 내려간 사람들에게 주는 마루야마 겐지 식의 무서운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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