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육 패러다임이 바뀐다… ①카이스트 '에듀케이션 3.0' 수업 현장을 가다

조선일보
  • 김세영 기자
    입력 2015.06.01 03:00

    온라인으로 先학습, 수업시간엔 토론
    강의실은 학생 목소리로 가득했다

    이도창 교수(생명화학공학과)의 '생명화학공학 해석'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카이스트 에듀케이션 3.0 전용 강의실. 소음이 적고 칠판이 많아 토론에 적합하다
    이도창 교수(생명화학공학과)의 '생명화학공학 해석'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카이스트 에듀케이션 3.0 전용 강의실. 소음이 적고 칠판이 많아 토론에 적합하다/임영근 기자
    우리 아이의 미래교육 어떻게 시킬 것인가. 요즘 교실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교사가 설명하고 학생이 받아적는' 모습은 몇 년 내 학교에서 사라지고, 아이들은 부모 세대가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교육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일부 학교에서 '플립러닝(flipped learning)'을 도입한 것만 봐도 그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플립러닝이란 수업에 앞서 학생이 교수·교사가 제공한 강연 영상으로 미리 공부하고, 교실에서는 토론·과제 풀이 등을 수행하는 '역(逆)진행 수업 방식'을 말한다. 맛있는공부는 '교육 패러다임이 바뀐다'라는 기획 아래, 지금 우리 아이들의 교실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차례로 소개한다. 그 첫회로 혁신적 교육 모델 '에듀케이션 3.0'을 도입한 카이스트의 달라진 수업 모습을 국내 최초로 공개한다.

    ◇시끌벅적한 강의실

    지난 27일 오후 1시, 생명화학공학과 전공필수 과목 ‘생명화학공학 해석’ 수업이 진행 중인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응용공학동 2층 강의실은 학생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온 벽이 칠판으로 둘러싸인 교실에서 다섯 명의 조교가 각각 자신의 조에 속한 7~8명의 학생과 편미분방정식 응용법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에듀케이션 3.0 수업이 이루어지는 강의실 모습이다. 카이스트가 외부인에게 에듀케이션 3.0 수업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던 교실 현장은 ‘이곳이 강의실 맞나’ 싶을 정도로 활기 넘쳐 보였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누구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수강생들은 궁금한 점을 조교나 교수에게 망설임 없이 묻고, 칠판 앞에 나가 자기만의 풀이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졸거나 스마트폰을 보는 학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동건(19·생명화학공학과 2)씨는 “교수님께서 올려주신 개념 강의 동영상을 보고 왔다”며 “예습하지 않으면 수업을 따라가기 어렵다”고 귀띔했다. 4학기째 이 같은 방식으로 수업을 운용 중인 이도창 교수(생명화학공학과)는 “강의식 수업을 할 때는 학기 말에 가까울수록 학업 내용이 어려워져 포기하는 학생이 많았다”며 “지금과 같이 수업 방식을 바꾸고 나서 교수와 조교, 학생 간 밀착도가 높아져 학습 효율이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에듀케이션 3.0 수업은 교수가 직접 찍은 온라인 강의와 토론·협동형 과제·실험 등의 오프라인 활동으로 구성된다. 동영상을 통해 미리 개념을 머리에 넣고, 수업에 들어와서 조별 토론 등을 통해 심화 내용을 다룬다. 교수는 동영상을 촬영·편집한 다음 온라인에 올리고, 학생들은 예습하고 토론을 준비하기 때문에 기존 수업보다 품이 더 든다. 플립러닝과 유사한 방식이지만, 카이스트는 여기에다 연구 중심 대학답게 실험·그룹 과제 등 각 수업에 꼭 맞는 다양한 방법을 개발했다. 이 같은 수업 모델 활용 여부는 교수들의 선택에 달렸다. 교수가 “다음 학기 수업에 에듀케이션 3.0 모델을 적용해보고 싶다”고 신청하면, 학교가 컨설팅을 통해 강의 내용에 적합한 학습 모델을 설계하도록 돕고 예산을 배정하며 전용 강의실을 제공하는 식이다. 2015학년도 1학기 현재 전체 1300여 개 강의 중 에듀케이션 3.0 모델을 적용한 강의는 총 54개다. 조기순 카이스트 교수학습혁신팀장은 “에듀케이션 3.0 모델을 처음 도입한 2012년 1학기에 이 모델을 활용한 강의가 3개에 불과했다”며 “플립러닝 수업을 1~2개 진행하는 다른 대학과 비교하면 지금은 괄목할 만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카이스트를 배우자”… 벤치마킹 늘어

    카이스트가 새로운 수업 모델 개발에 착수한 것은 지난 2009년이다. 당시 서남표 전 총장을 비롯한 학교 구성원들이 쌍방향성을 강조하는 세계 교육 흐름에 맞춰 미래형 교육 모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교수 중심의 일방적 강의와 e러닝 등으로 대표되는 기존 모델이 아닌, 새로운 학습 모형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2011년 카이스트 학생들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일어나자, 학생 중심의 수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교내 교수학습혁신센터가 중심이 돼 연구를 거듭한 끝에 2011년 에듀케이션 3.0을 개발해냈지만, 처음부터 이 학습법이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권길헌 카이스트 교육원장은 “교수들은 온라인에 자신의 강의를 공개하고 토론으로 수업을 운영한다는 방식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권 원장은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진 학생들이 ‘이 수업을 위한 참고서’는 어디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 모델을 시도해본 교수들은 금방 효과를 깨달았다. 석현정 교수(산업디자인학과)는 “2012년부터 매 학기 에듀케이션 3.0 방식으로 수업을 했다”며 “학생들의 몰입도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온라인 강의를 몇시에 올릴 것’이라는 예고 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배경음악과 고급 마이크 시스템을 사비로 사들였다.

    수강생의 반응도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지난 학기 강의 평가에서 ‘에듀케이션 3.0 수업을 다시 듣겠느냐’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대답한 학생이 전체 응답자의 70%를 넘었다. 지난해에 이어 에듀케이션 3.0 수업을 수강 중인 강동원(20·산업디자인학과 2)씨는 “온라인 강의는 언제든 들을 수 있어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모르는 부분을 돌려 볼 수 있기에 기본기를 단단히 할 수 있다. 수업 중 친구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므로 인간관계에서도 배우는 점이 많다”고 말했다.

    최근 플립러닝이 교육계 화두로 떠오르면서 유사한 교육 모델을 일찍부터 실험해온 카이스트로 눈길이 쏠리는 추세다. 여타 대학으로부터 “노하우를 전수해달라”는 요청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6년간 이 사업을 맡아온 조기순 팀장은 요즘 일주일에 2~3일씩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에듀케이션 3.0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강성모 카이스트 총장은 “에듀케이션 3.0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는 모습을 우리도 자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며 “4~5년 내 에듀케이션 3.0 적용 수업을 전체의 30%까지 늘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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