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요셉의원 4층 도서실. 남루한 차림의 남성 넷이 책장을 넘기고 있다. 낮 1시 도서실 문이 열리자 자리를 잡은 노숙인 이모(52)씨는 중국 고전(古典) '장자의 지혜'를 골랐다. 일주일에 세 번은 온다는 그는 "여기저기 떠돌며 몸도 마음도 많이 다쳤지만, 책을 읽으면 위로가 되고 앞으로 잘 살아봐야겠다는 의지도 생긴다"면서 "책 속의 지혜를 얻다 보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요셉의원 도서실은 2012년 여름 책 2000권으로 문을 열었다. 3년 만에 장서(藏書)는 문학·인문·과학·만화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3000권으로 늘었다. 병원 환자뿐 아니라 인근 영등포역 주변 노숙자도 많이 찾는다. 도서실에서 여는 글쓰기 대회 상품을 바라고 왔던 노숙인들이 이제는 정기적으로 찾아와 책을 읽는다.
도서실 자원봉사자 황돈(68)씨는 "하루 20명 정도 꾸준히 도서실을 찾아온다"면서 "공공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길 부끄러워하던 노숙인이나 쪽방촌 주민도 눈치 보지 않고 책을 읽는 공간이 됐다"고 했다. 얼마 전엔 반백의 머리를 곱게 빗은 노숙인이 "물리나 화학 책은 없느냐"고 묻기도 했다. 황씨는 "한때는 전문가였던 분이 과거에 읽었던 책들을 찾는 것 같았다"고 했다.
요셉의원 도서실에 이용자가 늘자 '책을 사는 데 써달라'는 후원금도 늘었다. 인근 대형 서점에서도 새 책을 기증하고, 요셉의원에서 무료로 진료받은 환자들이 책 꾸러미를 들고 오기도 한다.
요셉의원 측은 "몸의 상처는 병원이, 마음의 상처는 책이 치료해주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