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다가 죽고 싶다"

조선일보
  • 어수웅 기자
    입력 2015.05.30 03:00

    하버드 의대 교수인 가완디 "生命에만 능숙한 현대 의학, '인간적인 죽음' 대처엔 실패"
    무력감 큰 요양원 노인들에게 고양이·개·잉꼬 등 선물하자 향정신성藥 처방 반으로 줄어

    어떻게 죽을 것인가 책 사진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 지음 | 김희정 옮김
    부키 | 400쪽 | 1만6500원

    이번 주 Books에 소개할 책을 처음 고를 때만 해도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우선 순위에 있던 것은 아니었다. 임종이 임박한 노인이라 할지라도, 죽음이라는 화제를 반기지는 않는 법. 조간 신문 역시 이 주제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까지 한달음에 읽고 난 뒤, 생각을 바꿨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윤리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하버드 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예외적 경력의 아툴 가완디가 썼다. 우리가 늙고 쇠약해져서 더 이상 스스로를 돌볼 수 없게 되었을 때, 다시 말해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 '인간다운 죽음'을 맞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완디는 기품 있는 문장과 설득력 있는 사례로 들려준다. 자신도 의사지만, 그는 현대 의학은 '생명'에만 능숙할 뿐, '죽음'의 준비에는 완벽하게 실패했다고 단언한다. 신체적인 건강을 복구하는 훈련만 받았기 때문이다. 노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 그리고 삶을 가치 있도록 도와주는 환경에 현대 의학은 별 관심이 없다고 비판한다. 알지만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자식들이 더 이상 늙은 부모를 부양하지 않는 현대라지만, 가완디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안에 대해 말한다.

    가장 비근한 예가 요양원이다. 휴양하면서 병을 치료한다는 사전적 정의와 달리, 요양원의 노인은 세 가지 역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무료함, 외로움, 무력감. 아침 일곱 시에 직원들이 복도를 따라 퍼레이드를 벌이듯 행진해 들어와 서둘러 샤워시켜 옷을 입히고, 줄지어 약을 타먹게 하고, 단체로 밥을 먹이는 규제와 규율의 공간. 좀 길지만, 가완디가 취재한 사례 하나를 인용해보자.

    기사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뉴욕 외곽 체이스 요양원의 평판은 원래 크게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좀 더 적극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식물과 동물을 요양원 노인들의 일상 안으로 끌어들인 것. '타깃'이라는 이름의 그레이하운드와 '진저'라는 이름의 작은 개, 그리고 고양이 네 마리와 잉꼬 100마리를 들였다. 주도면밀한 계획을 짜고 한 일은 아니었다. 잉꼬가 배달되었을 때, 별도로 주문했던 새장 100개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니까. 잉꼬 배달부는 바쁘다며 잉꼬 100마리를 1층 미용실에 풀어놓고 떠나버렸다. 몇 시간 뒤 도착한 새장은 조립되지 않은 채로 납작한 박스에 포장되어 있었다. 이 아수라장의 와중에 생기있는 변화가 시작됐다. 평소 '무기력'하던 노인들이 새장 조립을 자발적으로 시작한 것. 잉꼬는 방 하나에 한 마리씩 배치됐다. 극도로 내성적이던 할머니 거스는 "내 커피를 잉꼬에게 줘도 되냐고 '말'을 했고, 식사도 거부한 채 우울증에 시달리던 할아버지 L은 "내가 타깃과 진저를 산책시켜도 되느냐"며 처음으로 침대 밖으로 걸어나왔다.

    전문가들은 체이스 요양원의 새로운 시도를 수치로 요약했다. 다른 요양원에 비해 복용하는 처방약이 절반으로, 특히 할돌처럼 불안 증세에 먹는 향정신성 약품 처방이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치보다 더 중요했던 것이 있다. 무력감과 외로움에 시달리던 노인들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줬다는 것.

    체이스의 사례는 그 일부일 뿐이다. 가완디 교수는 '혼자 설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모든 것은 결국 허물어지게 마련이다' '치료만이 전부가 아니다' '누구나 마지막까지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어한다' '두렵지만 꼭 나눠야 하는 이야기들' 등 매 장마다 최근의 사례를 인용하면서, 죽음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성찰하도록 돕는다. 하나같이 진실하고 감동적이다.

    나이듦을 주제로 한 베스트셀러는 수도 없이 많다. 보통은 '내년에는 더 젊게' '나이의 샘물' '불로장생' '여전히 성생활' 이런 '위선적' 제목을 다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대가가 따르는 법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살아온 인생을 통해 알고 있다.

    우리는 모두 늙고 죽는다. 이 과정은 점차적이지만, 가차없다. 노화는 우리의 운명이고 언젠가는 죽음이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가파르게 곤두박질치는 길이 될 수도 있고, 각자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을 좀 더 오래 보존하며 사는 완만한 경사길이 될 수도 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낭떠러지가 아니라, 완만한 경사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그 선택이 '슬픔'이 아니라 '성숙'일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해 준다. 당신이 이 깨달음의 기회를 놓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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