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 문화부 차장

재개발을 앞둔 동네 어귀를 지나는데 초등학생 딸이 말했다. "여기 조금 있으면 전부 폐지한대요." 자존심이 상할까 봐 맞장구를 쳐줬다. "그래. 다 폐지될 거야. 그런데 건물을 부수는 건 철거라고 하는 거야." 아이는 새로운 단어 하나를 배웠다. 말글살이는 집이나 학교, 책에서 하나씩 배워가며 완성되는 것이다.

온 세상이 문자 메시지로 대화하다 보니 글이 엉망이 돼가고 있다. 한자 뜻을 모르거나 잘못 아는 것은 물론이고 순우리말조차 들리는 대로 자판을 눌러 허공에 띄운다. 그저 맞춤법이 틀린 수준이 아니라 제법 그럴듯한(?) 의미를 갖춘 오자(誤字)들이 SNS에서 날아다닌다.

'일해라 절해라 하지 마라'는 마치 제사 지내다가 만들어진 속담처럼, 다시 말해 '감 놔라 배 놔라'처럼 들린다. '골이 따분한 생각'도 매우 창의적인 오류다. 얼마나 머릿속이 따분하면 그렇게 고리타분한 생각을 하겠는가. '삶과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는 좀 다르다. 명복(冥福)의 뜻을 모르니 삶에다가도 저승의 복을 비는 것이다.

이번 봄에는 꽃샘추위 대신 '곱셈 추위'가 찾아왔다. 봄날 추위치고는 두 배로 춥다는 뜻이겠다. 올여름엔 나눗셈 더위가 와야 할 텐데 어떨지 모르겠다. '노력이 숲으로 들어갔다'는 말은 상당히 문학적으로 엉망이다. 기껏 들판에 꺼내놓은 노력이 물거품[水泡·수포] 되는 대신 숲 속으로 되돌아갔으니 낭패다.

아이돌이 아플 때마다 SNS는 "오빠, 빨리 낳으세요"라는 댓글로 물결친다. 오빠는 임신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은데 빨리 출산하라고 독려한다. '나물 할 때 없는'이란 말을 어떻게 나무랄 데 없는 곳에 썼는지는 영 수수께끼다. 흠 잡기 어려운 것과 반찬 만들 시간조차 없는 게 어찌 같은 뜻이 될까. '시험시험 해라' 역시 공부를 쉬엄쉬엄 하지 않고 시험을 앞두었으니 쉬지 말고 하라는 말로 들린다.

전 국민의 우리말 수준이 떨어졌다고 하면 견강부회(牽强附會)가 될 것이다. 그보다는 SNS에 의존하는 세대의 한글 지식이 역시 SNS 때문에 드러났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마마 잃은 중천공(남아일언 중천금)'이란 말을 쓴 사람은 사극(史劇)을 그만 봐야 할 것 같다. '죄인은 오랄을(오라를) 받아라' '수박 겁탈기(겉핥기)'는 말할 것도 없다.

책을 읽는 것만이 이런 엉터리 우리말을 내쫓는 방법이다. 저자는 기본적 문장력은 갖췄을 것이고, 모든 책은 출판사의 교열을 거쳐 나오기 때문이다. 작년 한국인이 가장 많이 했던 여가 활동은 여전히 TV 시청(51.4%)이고 그다음이 인터넷과 SNS(11.5%)였다. 여가는 평일 3.6시간, 휴일 5.1시간이었으니 국민 절반 이상이 TV 시청과 인터넷·SNS를 일처럼 열심히 한 셈이다. TV에서 들은 대로 SNS에 써 올리니 황당한 말이 난무한다.

TV 종사자들이 올바른 말을 정확한 발음으로 써주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무망(無望)한 것 같다. 아나운서들조차 "방송이 고르지 못했던 점 양해 말씀 드립니다"라고 말한다. 시청자가 해줘야 할 양해를 왜 아나운서가 먼저 하는가. "빠른 볼이던 커브던, 못 치는 공이 없어요"라고 자신 있게 외칠 때는 TV를 꺼버린다. 보고 있는 게 창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