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검사들 한직으로 밀릴 때 '국보법 해설서' 펴낸 '미스터 국보법'

입력 2015.05.21 10:19 | 수정 2015.05.21 14:41

새 국무총리 후보로 내정된 황교안(58·사법연수원 13기) 법무부장관은 30여년 검찰에 재직하는 동안 대표적인 공안검사로 불렸다. 노동·국보법·집시법 해설서를 써 '미스터(Mr.) 국보법'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칼(KAL)기 폭파범 김현희를 조사했고, '임수경 밀입북 사건' 수사를 맡았으며, 2005년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로 재직할 당시엔 '국정원 불법도청사건'을 수사해 전직 국정원장인 임동원, 신건씨를 구속 기소하기도 했다.

그는 공안 사건에 대한 나름의 소신이 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들어 ‘구(舊)공안’이란 말이 유행했을 때다. 과거 정권 공안부에서 오래 근무했던 검사들이 정기인사에서 한직으로 물러나고 이른바 ‘신공안’ 검사들로 채워졌다. 그 무렵 공안 검사들은 대부분 자신의 ‘공안 전력’을 내세우는 걸 꺼렸다. 그런데 그 때 그는 ‘국가보안법 해설’이란 책자를 펴냈다. 그는 “국가가 존속하는 한 체제 수호에 관한 법률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
노무현 정권 시절이던 2005년 그는 서울중앙지검 2차장으로 있으면서 인터넷 매체에 “6·25 전쟁은 북한 지도부에 의한 통일 전쟁”이란 글을 실은 동국대 강정구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수사를 지휘했다. 당시 그는 ‘구속 수사’를 주장해 천정배 법무부장관과 마찰을 빚었다. 천 장관의 ‘불구속 수사’ 지휘권 발동으로 김종빈 검찰총장이 사퇴했고, 황 후보자는 2년간 검사장 승진을 하지 못했다.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는 말이 나왔다.

그는 이명박 정부 들어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검찰총장 후보군으로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으나 동기인 한상대 전 검찰총장이 취임하자 2011년 8월 부산고검장을 마지막으로 옷을 벗었다.

하지만 그의 이런 소신은 현 정부들어 힘을 받기 시작했다. 정부 출범과 함께 법무부장관이 된 그는 2013년 9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이 ‘RO(지하혁명조직) 사건’으로 구속되자 법무부에 위헌 정당·단체 관련 대책 TF(task force)를 만들었다. 또 일선 검찰청 캐비닛에 있던 각종 수사자료를 TF로 총집결시켜 정밀 분석을 지시했다. 어디에 어떤 자료가 있는지, 무슨 자료가 필요한지 그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한다.
황교안 새 총리 후보.
준비를 마친 그는 2013년 11월 정치적 위험 부담을 무릅쓰고 통진당 해산 심판을 청구했다. 그는 한 사석에서 “민주노동당(통진당 전신)이 2000년 창당했을 때 언젠가는 위헌 정당 심판이 있을 줄 알고 나름대로 준비를 해왔다”고 했다. 헌재는 지난해 결국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결정했다. 이런 일들이 그가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을 얻는 밑바탕이 된 것으로 법조계에선 분석하고 있다.

그는 사석에선 차분하고 온화한 편이다. 말 수도 그리 많지 않다. 2009년 직접 연주한 색소폰 CD를 발표해 검찰 안팎에서 '색소폰 부는 검사'로도 알려져 있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야간 신학대학에 편입학해 졸업한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종교활동과 분쟁의 법률지식'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서울 출신으로 경기고와 성균관대 법학과를 나왔다. 검찰에선 대검 공안1과장, 서울지검 공안2부장, 서울중앙지검 2차장, 대구·부산고검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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