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초점] 경제 통계의 치명적 錯視 현상

입력 2015.05.18 03:00

'赤字재정'이라며 긴축 주장하나 국제 기준으론 한국 '黑字재정'
글로벌 금융위기 때 원화 폭락도 당시 단기외채 성격 오해로 발생
통계 발표 때 적극적 설명하면 경제정책 합리적 토론 가능해져

권구훈 골드만삭스 수석 이코노미스트
권구훈 골드만삭스 수석 이코노미스트
통계는 통계일 뿐이라고들 한다. 통계를 맹신하지 말라는 뜻이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그보다 더한 것이 통계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숫자 하나가 온 경제를 뒤흔들 때도 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원화 폭락은 오해의 소지가 많은 숫자 하나에서 비롯되었다. 한국의 단기외채가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이 잡혔는데, 이는 호황을 누리던 조선업계가 수주대금의 환위험을 줄이려고 빌린 단기외채 때문으로, 개발도상국의 통상적 외채와는 전혀 다른 성격이었다. 매 분기 발표되던 이 숫자가 당시 불안감이 극도로 높았던 시장의 관심을 끌더니 결국 외환시장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이례적으로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공동 해명 자료까지 냈지만 결국은 미국 연준의 통화 스와프와 은행에 대한 한은의 외환 지원으로 겨우 진정되었다.

통계는 계기판이다. 계기가 비정상인 것을 운전자가 알면 불편해도 위험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를 운전자가 모르거나 알아도 동승자들이 계기대로 보자고 우기는 경우에 불량 계기판은 치명적인 위험이 된다.

한국의 재정은 적자라고들 한다. 그런데 국제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재정은 2002년 이후로는 2009년만 빼고는 다 흑자다. 요 몇 년간 흑자가 줄었지만 여전히 20조원에 달하는 대단한 흑자다. 정부에서 가져가는 것이 쓰는 것보다 많다는 뜻인데, 예산에서 별도로 다루는 국민연금과 같은 사회보험에 납부하는 준조세 때문이다. 부양책이 현재 필요한지는 전문가와 정책당국이 판단할 사항이지만 국제 기준에 따른 한국의 재정은 흑자라는 현실을 함께 인지해야 합리적 토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외국에서 볼 때 한국은 거의 유일한 지속적 재정 흑자국으로 금리까지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으니 채권 투자로 원화 강세 압력을 준다. 한국에서만 과속으로 주행한다고 생각할 뿐 바깥에서 볼 때는 아주 안전하게 달리는 건전 재정국이다.

재정의 중장기 건전성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지만 차종(車種)을 바꾸든지 목적지를 바꿔야 하는 큰 틀의 구조적 문제로 계기판을 고쳐서 천천히 달린다고 크게 도움이 되는 게 아니다. 팍팍해진 살림살이와 수년간 지속되는 불경기로 적금을 깨거나 빚을 늘리는 사람이 여전히 많은 지금 긴축 재정으로 재정 흑자를 더욱 늘리자는 주장에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적자재정이라는 통계 착시에 사로잡히면 추경에 대한 논의도 겉돌기 십상이다. 금융위기 여파로 더딘 경기 회복과 저물가로 작년같이 세수가 모자라면 적자가 늘어 경기 악화를 줄여주는 게 교과서에서 배운 재정의 자동 안정 장치다. 근데 한국의 재정법은 이럴 때 자동으로 지출을 삭감하므로 재정의 불안정 장치가 작동되는 셈이다. 이런 의도치 않은 긴축으로 생기는 경기침체를 막으려면, 추경으로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적자재정이라는 통계의 착시에 빠져, 이미 적자인데 또 부양한다고 걱정하거나 심지어는 세금을 더 걷자는 얘기도 나올 수 있다. IMF를 비롯한 국제금융계에서 보면 시속 30㎞로 달리면서 과속하지 말자는 얘기로 들릴 것 같다.

최근 변경된 경상수지와 국내총생산 통계도 주의해야 한다. 작년부터 해외 생산과 중계무역 일부가 국내 생산으로 잡히니 국내 생산활동과 관계없이 GDP가 늘게 되고, 연구개발비는 비용에서 투자로 처리되어 그만큼 기업 이윤이 늘어난 것처럼 보인다. 이미 바꿨으니 어쩔 수 없지만 통계 발표 때마다 각주라도 달아서 이런 회계 변화가 총생산과 소득분배 통계에 얼마나 어떻게 영향 주는지를 적극적으로 설명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래서 경제 통계의 착시가 줄어들면 수출의 낙수 효과, 그리고 체감과 통계상 경기의 괴리 등 많은 사람이 관심 있는 문제들에 관해 좀 더 합리적인 토론이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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