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말 알겠지?"… 이 말, 폭력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조선일보
입력 2015.05.16 03:00

'여자가 뭘 알아?' 무시하면서 가르치려 드는 남성들의 속성… 가정폭력 등으로 나타나기도
여성 입장만 옹호하기보다는 '남성 탐구'도 함께 이뤄져야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리베카 솔닛 지음|김명남 옮김|창비|240쪽|1만4000원

미리 일러두지만, 이 책은 '꼰대'들을 향한단순 일침이 아니다. 자기 얘기만 주야장천 늘어놓는 일부, 나이 든, 엘리트 남성들의 심리를 파헤쳤을 거라 기대한 건 순전히 제목 탓이었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구독한 페미니즘 잡지 '미즈'를 읽었고, 10대 땐 여성이 밤거리를 자유롭게 거닐 수 없다는 사실에 분노했던, 뼛속부터 페미니스트인 저자는 마초들의 전지전능식 연설, 그 바탕에 도사린 젠더와 권력의 문제를 파헤친다. "결국 페미니즘이었어?" 하고 인상 찌푸릴 독자들이 있겠지만, 이 책이 '맨스플레인(Mansplain, man+explain)'이란 신조어를 낳으며 전 세계 여성들을 열광시키고, 남성들은 열받게 한 '문제작'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불편해도' 한 번쯤 일독할 만하다.

책은 저자가 겪은 사소한 일화로 시작한다. 파티에서 만난 한 남자가 '아주 중요한 책이 나왔더라'며 장광설을 펼친다. 듣다 보니 자기가 쓴 책이다. 옆사람이 "그게 바로 이 친구 책"이라고 일깨우는데도 남자는 계속 자기 얘기만 한다. 상대를 무시하고 자기 말만 퍼붓는 여성도 많다고 반박할 사람을 위해 저자는 또 다른 예를 든다. FBI여성요원 콜린 롤리는 무사위라는 알카에다 요원이 수상한 의도로 비행 교습 받은 걸 알아채고 수색허가를 신청하지만 무시당한다. 무사위는 현재 9·11테러 가담자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롤리의 말을 귀담아들었더라면 9·11테러를 막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의 경우도 비슷하다. 살충제의 위험을 경고한 기념비적 저서 '침묵의 봄'을 출간했을 때 사람들(대부분 남성 비평가들)은 그녀가 여성이란 사실을 구실로 공격했다. 불공평하고 일방적이고 히스테릭할 만큼 '지나치게 감정적'인 책이라고.

저자는 묻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자신감에 넘쳐서 정면대결을 일삼는 사람이 왜 유독 한쪽 성(性)에 많을까?" 그로 인해 여자들은 나서서 말하길 주저하고 설령 용감히 나서서 말하더라도 경청되지 않는다. "남자들은 수태(受胎)를 연상시키는 음흉한 비유라 할 만큼 나를 자신들의 지혜와 지식으로 채워야 할 빈 그릇으로 본다"며 비꼬는 저자는, "이는 거의 모든 여자들이 매일같이 치르는 전쟁으로, 자신이 잉여라는 생각과의 전쟁이자 침묵하라는 종용과의 전쟁"이라고 갈파한다.

멕시코 출신 극사실주의 화가인 아나 테레사 페르난데스의‘세정식’연작 중에서‘물병자리’.
멕시코 출신 극사실주의 화가인 아나 테레사 페르난데스의‘세정식’연작 중에서‘물병자리’. 저자는 버지니아 울프, 수전 손택의 문학과 함께 페르난데스의 작품들을 이 책에 등장시킨다. /아나 테레사 페르난데스 제공
문제는 여성의 입을 막는 '남성들의 가르침'이 가정폭력, 성폭력, 심지어 여성증오 살인과 하나의 고리로 이어져 있다는 점이다. 모두 남자들의 권력 남용에서 비롯됐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남자가 두드려 맞고 성희롱당하며 여자친구에게 명품백을 사주려 알바를 뛴다는 요즘 시대에 너무 심한 비약 아닌가 반문하는 사람들은 저자가 들이대는 통계에 머쓱해질 것이다. 9초마다 한 번씩 여자가 구타당하고, 6.2분마다 성폭력 사건이 신고되며, 남자들의 배우자(또는 옛 배우자) 살인이 1년에 1000건에 이른다는 미국의 현실 말이다. 미국뿐이랴. 온라인에 난무하는 성희롱, 개그프로의 여성 비하, "너 따위 여자가 뭘 알아?" 식의 여성혐오 발언이 극에 달한 지 오래다. "입 닥치지 않으면 강간하겠다고 협박하는 온라인 게이머들과 말랄라 유사프자이를 살해하려 했던 탈레반 남자들과 무엇이 다른가?" 모든 남자가 여성혐오자나 강간범은 아니지만, 모든 여자들이 여전히 강간과 살해를 두려워하면서 산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강변한다.

이 단호하고 예리한 통찰에 정신이 번쩍 들면서도 석연치 않은 느낌은 남는다. 가르치려 드는 태도가 과연 남녀관계에서만의 문제일까. 나이, 계층, 직장 상사와 부하, 부모자식 관계에서 벌어지는 맨스플레인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사사건건 가르치려 드는 아내, 엄마, 할머니는 권력의 문제인가? 책을 읽으면서 품었던 가장 큰 궁금증도 결국 풀지 못했다. '도대체 남자들은 왜 그럴까? 그들이 정말 원하는 건 무엇인가? 20대 젊은이조차 여성을 비하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이유는 뭘까?' 맨스플레인의 해답을 알려주는 열쇠는 결국 남성들에 있다. '남성 탐구'야말로 우리가 당장 시작해야 할 흥미로운 주제라는 걸 이 책은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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