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그리스가 무너진다고 처음 소동이 벌어졌을 때다. 아테네 어디서도 정확한 통계를 구할 수 없었다. 공무원 숫자가 100만이 아니면 120만이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200만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공무원 숫자는 파악해본 적이 없었다. 정부조차 그 실체를 몰랐다고 봐야 한다. 숫자가 많다 보니 일하는 공무원은 별로 없다. 오죽하면 9시에 정상 출근하는 공무원에게는 특별 수당을 지급했겠는가.
그리스 밖에선 그리스가 부도 나면 공무원 때문이라고들 했다. 하지만 정작 안에서 공무원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공무원 노조의 투쟁 구호만이 광장을 휩쓸었다.
국회의원이 되려면 공무원에게 잘 보여야 했다. 선거 때면 정당들마다 공무원 연봉과 연금을 올려주고, 공무원 숫자를 늘리고, 공무원 조직을 키우는 공약을 내걸었다. 다음에 집권하는 정당은 그보다 더 올리고, 더 늘리고, 더 키우는 공약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됐다. 그럴수록 공무원 노조는 커지고 강해졌다. 정당도, 의원들도 날이 갈수록 공무원 집단의 인질로 잡힐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치프라스 정권도 그런 생산 라인에서 탄생했다고 보면 된다.
우리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생산된 과정은 그리스를 꼭 닮았다. 공무원 노조의 주장이 거의 그대로 반영된 결과가 가장 중요한 증거다. 청와대, 여야 지도부 누구도 애초 합의한 안이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는 것을 보면 공무원들 비위를 상하지 않게 하려는 조심성을 엿볼 수 있다. 청와대부터 '이 정도에서 대충 지나가 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한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번 정권은 공기업 민영화를 중단했다. 철도 노조가 파업하자 민영화는 절대로 없다고 다시 여러 차례 못을 박았다. 치프라스 정권도 '항만 및 전력회사 민영화를 동결하겠다'고 했다. 치프라스가 재정 재건을 하겠다며 지난 정권이 해고했던 공무원을 복직시키기로 했다면, 박근혜 정부는 복지·치안 수요가 늘었다는 명분을 앞세워 공무원 숫자를 늘리고 있다.
공무원을 늘리고 공조직을 키우는 정권이 공무원연금에 손을 대겠다고 나선 것부터가 어울리지 않았다. 진정한 보수 정권이라면 공무원을 줄이고 정부 권한을 축소하고 공기업 민영화 정책을 추진해야 옳다. 하지만 웬일인지 처음부터 칼날을 거꾸로 잡았다. 큰 방향은 관(官) 우대로 설정해 놓고 그 안에서 연금을 고친다, 규제를 풀겠다고 하니 제대로 될 턱이 없다. 자동차 앞바퀴는 치프라스 정권처럼 왼쪽으로 돌리면서 뒷바퀴는 오른쪽으로 틀어보겠다고 억지를 쓰는 형국이다.
한국에서 공무원은 상당 기간 동안 '우수하다'거나 '유능하다'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직업이었다. 그들이 일하는 관(官)은 믿어도 되는 조직이었다. 고도 성장으로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런 신뢰가 있었기에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유신(維新)헌법을 만들어 국회를 무력화하고 행정부 주도로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을 밀어붙였다. 행정부의 뜻이 그대로 입법부를 통과하는 극단적 형태의 '한국적 민주주의'가 등장했던 것이다.
하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고비로 공무원과 관청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작년에는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공조직이 무능하다 못해 한심한 지경이라는 것을 목격하고 말았다. "세금이 아깝다"는 푸념이 절로 나올 때가 잦아졌다. 정부 청사에 들렀다가 혀를 끌끌 차며 방금 지나온 문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 기업인들은 갈수록 늘고 있다.
이렇게 공무원과 공조직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공무원과 국회의원들뿐이다. 그러니 공무원 대표들과 여당, 야당 의원들이 하나 마나 한 찔끔 개혁안에 뚝딱 합의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자신들이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를 대표하는 양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말로 맹탕 개혁안을 포장한 것도 오만하고 뻔뻔해 보인다.
우리는 굳이 그리스까지 찾아가 '국회의원+공무원 담합' 체제의 병폐를 연구할 필요가 없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한통속으로 담합하면 못할 일은 없다. 정기 국제선 한 편 못 뜨는 여러 곳에 국제공항을 건설하지 않았던가. 국회의원들이 소유한 땅 바로 옆에 산업공단과 신작로를 조성하기도 했다.
유신 체제 아래서 중화학공업 육성이 실패했던 이유는 두 차례 석유 파동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중화학공업을 지원할 자금이 국내에서 순조롭게 조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신 정부는 부가가치세를 신설해 무리하게 재원을 조달하다 부산·마산에서 강한 민심의 저항에 부닥치고 말았다. 당시 입법부는 행정부와 한 몸처럼 행동하다가 사실상 민란(民亂)이 날 때까지 밑바닥 여론을 대변하지 못했다.
공무원연금에 대한 요즘 국회의 태도도 그때와 다를 게 없다. 2000만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심정을 헤아리지 않고 있다. 여당·야당 의원과 공무원들이 한 몸으로 엉켜 춤추고 뒹굴면 반드시 국가적 변고(變故)를 낳고 만다. 중·고등학교에서 민주국가 3권분립의 원칙을 멋으로 가르치는 게 아니다. '견제와 균형'을 '담합 아니면 야합(野合)'으로 읽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