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로 50년인 독일과의 수교 기념식을 위해 지난 11일 베를린을 방문한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이 3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14일 수도 예루살렘으로 귀국했다. 독일 일간 '디벨트(DW)'는 "50년 전 홀로코스트를 문제 삼으며 수교를 반대하는 데 앞장섰던 청년 리블린이 이제 대통령이 돼 베를린을 찾아 양국이 '50년 지기 참벗(true friend)'임을 공언하는 의미 있는 방문이었다"고 전했다.

독일·이스라엘 정상 간의 일정은 끝났지만, 양국의 수교 50주년 행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양국 정부는 원수에서 동반자가 된 두 나라의 외교사를 기리기 위해 세계 각국의 양국 공관에서 5월 중순부터 연말까지 각종 문화 행사를 연다. 1965년 수교 후 베를린과 예루살렘에서 단발 행사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해외에서 대대적으로 치러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양국 정부에 따르면, 이번 행사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반(反)유대주의 정서가 팽배해지고 있는 프랑스 등 세계 전역에서 치러진다. 행사일은 각국마다 다르지만, 주요 테마는 '과거사 사과와 용서' '지속적인 양국 관계 발전'이다. 수교 50년 기념 로고(logo·사진)도 양국 국기를 하나로 합쳐 이은 '뫼비우스 띠'를 형상화했다. 이번 행사를 통해 두 나라의 외교사를 반목과 대립을 거듭하는 국제사회에서 모범적인 사례로서 홍보하며 이를 국가 브랜드로 만드는 것이다.

레우벤 리블린(왼쪽) 이스라엘 대통령이 독일과의 수교 50년 기념일인 12일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독일·이스라엘 정부는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 등 과거사를 극복하고 동반자 관계가 된 두 나라의 외교사를 기리기 위해 올해 연말까지 해외 공관에서 각종 문화 행사를 열 예정이다.

오는 6월 베를린을 포함해 유럽 각국에서 치러지는 '수교 50년 행사'에서는 양국 교육학자가 공동 집필한 역사·지리·사회 등 3개 과목의 교과서가 공개된다. 교과서 공동 집필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이미 두 차례 추진됐으나, 그 후 20여년간 중단됐다. 이에 양국 교육부는 2011년 '교과서 위원회'를 발족하고, 2차 대전 후 독일의 나치 잔재 청산 과정, 이스라엘의 건국 과정 등 기존 교과서에서 소홀했던 부분을 보강하려고 노력했다.

한국에서는 '수교 50년 기념식'이 오는 6월 4일 서울 용산구 소월로 독일문화원에서 열린다. 이날 행사에서는 독일·이스라엘 배우들이 공동 출연한 영화 '워크 온 더 워터(Walk on the water·물 위를 걷다)'가 상영된다. '워크 온 더 워터'는 이스라엘 첩보 기관 모사드 요원이 나치에 부역한 독일인을 암살하라는 지시를 받지만, 그 독일인 가족이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로 인한 죄책감에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고뇌 끝에 '미션'을 포기하는 과정을 담았다. 영화 제목은 '물 위를 걷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기적처럼 실현될 수 있다'는 의미다. 과거사 문제로 주변국과 외교적 갈등을 겪고 있는 한국의 상황이 고려돼 이 영화 상영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구트만 주한 이스라엘 대사는 "홀로코스트는 용서할 수 없는 잔혹 행위지만, 이스라엘은 화해의 가치를 믿었고, 독일은 반성과 용서의 가치를 믿었다"면서 "양국 간 강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세계 각국에 나가 있는 양국 공관에서 수교 기념식 행사를 함께 치르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