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영철 숙청의 이면…"김정은과 평양 늙은 권력층 간의 균열"

입력 2015.05.14 11:12 | 수정 2015.05.14 12:06

“라선(羅先)지구 관료들이 무척 젊어졌습니다. 그 전에 다 60~70대였는데, 요즘은 40~50대들로 실무 책임자들이 싹 바뀌었어요.”

베이징 특파원으로 있던 2012년, 북한 라선특별시를 다녀온 한 중국인 사업가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김정일이 사망한지 6개월쯤 된 시점이었죠. 두만강 하구에서 가까운 라선은 북·중·러 3국 간 경계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북한이 개방을 위해 경제특구로 지정한 곳입니다. 중국, 홍콩 자본이 호텔부터 수산물가공업체까지 적잖은 투자를 하고 있는 곳이죠.

/신화통신 북한 라선특별시의 3호 부두.
이 사업가에 따르면 김정은은 북한 당·정·군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60대 이상의 나이 든 파워엘리트그룹에 대한 불만이 크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현지 지도를 나가 무슨 지시를 해도 반응이 없다고 해요. 열심히 메모를 하기는 하는데, 유럽에서 교육받은 김정은이 하는 얘기를 잘 알아듣지 못 하고, 알아들어도 뭉개기 일쑤였다는 겁니다.

그 때문에 김정은이 실무 그룹을 젊은 층으로 교체하는 작업에 들어갔고, 라선이 가장 먼저 바뀌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만 해도 김정은이 평양 권력층의 핵심인 60~80대 ‘할아버지’들을 건드릴 엄두는 내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4월말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처형했다는 걸 보니, 집권 4년이 가까워진 요즘 김정은이 상당히 자신감이 붙은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정은의 숙청 작업은 이미 그 해에 시작됐습니다. 그것도 자신과 가장 가깝다는 리영호 북한군 총참모장이었습니다. 리영호는 2007년 김정은이 김일성 군사대학을 졸업하고 포병부대에서 군 생활을 할 당시 직속상관이었죠. 이런 인연으로 2009년 차수로 진급해 북한군 총참모장이 됐습니다. 김정일 사망 당시, 김정은과 장성택, 김기남·최태복 당비서 등과 함께 관을 운구해 차세대 실력자로 부상했죠.

소식통에게 들으니, 리영호는 자신이 고속 출세를 거듭하자, 평양의 한 점집을 찾아 “내가 도대체 어디까지 올라갈 것 같으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노동당 조직부의 감찰망에 걸려 숙청을 당했답니다. 지금은 지방의 한 요양소에 감금돼 있는 걸로 알려졌습니다.
/노동신문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작년 6월25일 고아 양육시설인 평양육아원·애육원 건설 현장을 현지지도하는 모습. 노간부들이 그의 발언을 열심히 받아적고 있다.
김정은 숙청의 결정판은 2013년 고무부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 처형일 겁니다. 장성택은 김정일 말기에 노동당 행정부 산하에 외화벌이 기관 54부를 만들어 군부의 이권 사업을 뺏아 갔다고 합니다. 그 중 하나가 수산물 수출사업입니다. 동해안과 서해안에서 나는 수산물을 중국 등지로 수출하는 것인데, 수산물 수출은 북한의 주수입원 중 하나죠. 평양 살림집(주택) 10만호 건설 임무를 맡은 장성택은 이 이권사업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김정은은 호위총국을 보내 54부가 갖고 있는 수산물 수출권 회수에 나섰는데, 장수길 54부 부장(노동당 행정부 부부장)은 사복 차림에 권총을 휘두르며 저항을 했답니다. 김정은은 곧바로 장성택의 수하인 장 부부장과 리용하 행정부 제1부부장을 붙잡아 처형하고, 장성택이 스스로 잘못을 시인하기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장성택은 10여일을 자택에서 두문불출하면서 끝내 고개를 숙이지 않았고, 김정은은 결국 처형을 선택했다는 게 중국 측 소식통들의 전언입니다.

중국측 전문가들은 김정일 사망 이후 20대의 김정은이 집권했을 때, 60~80대 지배 엘리트 그룹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체제 안정의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김정은을 ‘어린애’ 정도로 보는 이들을 이겨내야 김정은 체제의 안정을 다질 수 있다는 겁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장시간 회의를 하면 바지에 오줌을 지릴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지만, 김정일 시대를 이끈 주역으로서 여전히 권력과 권위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김정은은 지난 2~3년 간 북한 주요기관의 실무 책임자들을 젊은 관료로 바꾸면서 세대 교체를 추진해 왔습니다. 최근 잇따르는 북한의 숙청 행렬은 이런 김정은식 개혁에 대한 평양 파워엘리트들의 반발이 생각보다 만만찮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북한 지배 엘리트 그룹의 균열로 이어질지, 아니면 김정은 독재의 공고화로 귀결될지는 아직 좀더 두고봐야할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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