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135] 라이징 선이냐 말춤이냐

조선일보
  •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입력 2015.05.14 03:00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지금부터 약 25년 전 1990년대 초를 기억해보자. 대단한 변화들이 있었던 시기다. 영원할 것만 같던 서베를린과 동베를린 사이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은 재통일을 이룬다. 그뿐인가? 동맹으로 시작한 2차대전을 원수로 끝낸 미국과 소련. 핵폭탄, 인공위성, 수소폭탄, 대륙간탄도탄, 핵잠수함…. 미국과 한치도 뒤지지 않고 40년 냉전시대를 유지해오던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은 1991년 15개 독립국으로 쪼개진다. 드디어 진정한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시대가 오는 듯했다.

    하지만 미래는 예측 불가능한 것일까? 공산주의 사상의 몰락을 제대로 인식하기도 전 일본이라는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난 것이다. 자동차, 전자, 컴퓨터, 게임…. 'Made in Japan'은 미국을 휩쓸었고,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한 일본은 미국을 경제적으로 점령하려는 듯했다. 일본 소니사는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들을 장악하고 미쓰비시 계열 부동산 회사가 미국 자본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뉴욕 록펠러센터를 사들인다. 당시 분위기는 영화에서도 잘 볼 수 있다. 공상과학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 나오는 미래 LA는 일본어 간판들로 가득하고, '데몰리션 맨'에 등장하는 미래 미국 시민들은 일본풍 옷을 입고 다닌다. 1993년 만들어진 영화 '라이징 선'에서는 일본 기업체 내에서 살해된 백인 여성을 배경으로 미국의 경제·정치·문화를 장악하려는 일본의 음모를 노골적으로 소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라이징 선'은 '해 뜨는 일본'이 아니라 '해 저무는 일본'의 시작이었다. 1990년대 초부터 일본은 20년의 긴 디플레이션에 빠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요새 우리나라 경제 뉴스들이 좋지 않다. 많은 전문가는 1990년대 초 일본을 다시 보는 듯하다고까지 말한다. 우리도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할 수 있다는 걱정과 함께 '라이징 선'이라는 세상을 위협하는 이미지까지 만들어낸 일본과는 달리 대한민국이 가장 '잘나가던' 시대는 우리나라 가수의 말춤이 세상을 6개월간 장악했던 때가 아닐까 하는 허탈함까지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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