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이 1949년 공산 정권 수립 두 달 만에 소련을 찾아갔다. 열차 한 량분 죽순·대파·배추·무, 스탈린 얼굴을 새긴 자수(刺繡)와 도자기를 선물로 실었다. 그는 두 달을 모스크바에 머물며 스탈린과 마라톤협상을 벌였다. 돌아올 땐 탱크 360대와 설계도, 바오터우(包頭)에 세울 탱크 공장 건설비를 손에 넣었다. 내전(內戰)의 폐허에서 다시 시작한 중국 군대는 소련군 복제판이나 다름없었다. 마오는 "소련을 배워 낙후성을 개혁하라"고 지시했다.

▶중국군은 탱크·전투기·잠수함·소총뿐 아니라 군복·철모까지 소련을 흉내냈다. 허리를 덮는 황갈색 제복에 황금색 계급장을 달았다.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허리까지 대각선 가죽끈을 둘러 소련 군대를 본떴다. 두 나라 사이 긴 역사에서 보면 1950년대 초 중·소의 '형제애'는 매우 보기 드문 현상이다. 러시아인이 '황색 군대'에 지닌 거부감은 뼛속까지 깊다. 13~15세기 볼가강 주변은 몽골군 말발굽에 초토화됐고 주민은 몰살당했다. 몽골이 세운 킵차크한국(汗國)은 러시아를 240년 지배했다. 19세기 말엔 중국인이 신장(新疆)과 극동으로 내려오는 러시아 군대를 무서워했다.

▶국제 관계에서 이념에 바탕한 '형제애'는 잠시뿐이다. 1960년대 초 중·소 분쟁이 격해지자 흐루쇼프는 중국에 파견한 과학자들을 철수시키고 기술 협력 프로그램도 폐지했다. 중국은 1969년 아무르강의 작은 섬을 지키던 소련군 31명을 사살해 핵전쟁 직전까지 갔다. 두 강대국이 화해의 길로 들어선 것은 중국이 개혁·개방 노선을 택한 80년대다.

▶시진핑 중국 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작년 상하이 정상회의(CICA)에 이어 그제 러시아 2차대전 승전 70주년 행사에서 손을 맞잡았다. 두 정상은 중국군 의장대 열병식에서 나란히 앉아 손을 흔들었다. 인민해방군 의장대가 처음 크렘린궁에 간 것 자체가 '화해와 우정'의 상징이다. 평균 키 188㎝의 잘생긴 중국 의장대 102명은 러시아 노래 '카추샤'에 맞춰 한 치 오차 없는 퍼레이드를 펼쳤다.

▶모스크바 시민들은 "이제 진짜 친구가 누군지 알겠다"며 손뼉을 쳤다고 한다. 모스크바 국립국제관계대학 안드레이 이바노프 박사는 "이번 퍼레이드에서 중요한 것은 야르스 대륙간탄도미사일 같은 최신형 무기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가 탄생할 것이라는 분명한 징후"라고 했다. 중·러 협력이 미·일 중심 국제 질서에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예측이다. 우리 입장에선 '용과 곰의 춤'이 한반도에 어떤 풍운을 몰고 올지가 더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