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미래] 기부가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입력 2015.05.12 03:00

[창간 5주년 특집 인터뷰]
한 해 3000억 기부금 움직이는록펠러 자선자문단 멜리사 버먼 대표
젊은 기부자 대거 등장, 기부뿐 아니라 직접 사회문제 해결 나서
에너지·빈곤 문제 등 정부 대신 민간이 주도해 성공시켜
비영리단체도 함께 '해결책' 제시해야

세계 최대 자선 자문기관인 '록펠러 자선 자문단(Rockefeller Philanthropy Advisory)' 멜리사 버먼(Melissa Berman·사진) 대표
AVPN 제공

기부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지난달 21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벤처필란스로피네트워크(AVPN)'에서는 '기부의 미래'에 관한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최근 미국 등 선진국에서 관심이 뜨거운 '벤처 기부(Venture Philanthropy)'는 전통적 기부 방식이 아닌, 기부를 사회 투자적인 개념으로 보고 자선단체에 투자한다. 아산나눔재단은 최근 '파트너십온' 프로그램을 출범시킴으로써 우리나라 비영리 영역에도 벤처 기부를 도입했다. '더나은미래'는 창간 5주년을 맞아, 전 세계 기부 흐름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세계 최대 자선 자문기관인 '록펠러 자선 자문단(Rockefeller Philanthropy Advisory)' 멜리사 버먼(Melissa Berman·사진) 대표를 인터뷰했다. 싱가포르 AVPN에 참여한 버먼 대표는 "전략적 기부 시대가 열렸다"고 말했다.  편집자

―14년째 록펠러 자선 자문단을 이끌어오고 있는 전문가로서, 지난 몇 년 동안 기부와 기부자들의 흐름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포드 재단, 켈로그 재단,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 같은 거대 재단들을 비롯, 대기업, 고액 기부자 등 기부계의 '큰손'들이 우리의 주요 고객이다. 지난 몇 년간 크게 네 가지 흐름이 두드러진다. 하나는 사람들이 이전보다 훨씬 더 어린 나이에, 더 적극적으로 기부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과거엔 많은 이가 죽을 때가 다 돼서야 유언으로 남기곤 했다.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것도 흔치 않았다. 이제는 다르다. 기부자들은 이슈에 대해 깊이 있게 알아보고 스스로 목소리를 낸다. 돈만 기부하고 마는 게 아니라, 시간과 전문성, 네트워크 등을 동원해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경우도 훨씬 많아졌다. 둘째 트렌드는 과거보다 훨씬 더 '거대한 문제' 해결을 목표로 잡는 곳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지역사회 장애인을 돕자'는 구호 대신 '모든 아이에게 좋은 헬스케어 시스템을 제공하겠다' '빈곤을 근절하겠다' 혹은 '바다를 보호하겠다' 같은 식이다. 이를 위해 시스템을 바꾸는 데 힘을 쏟는 기부자가 늘었다. 사회 변화를 만들기 위해, 많은 이가 단순한 기부를 넘어선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셋째 커다란 흐름이다. 사회적 기업이나, 임팩트 투자, 벤처 기부 등도 '어떻게 하면 사회 변화가 가능할까' 하는 고민에서 나온 다양한 방법이다. SNS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적극적으로 이슈를 알리고 주변인들을 참여시키는 것도 또 다른 예다. 끝으로 사람들이 '레거시(legacy·유산)'에 두는 의미가 커졌다. 컬럼비아 경영대학에서 '전략적 기부'를 강의할 때 나의 첫 질문은 '록펠러가 어떤 사업으로 돈을 벌었는지 아느냐'는 것이다. 석유 사업은 금세 잊히지만, 록펠러 재단, 록펠러 대학은 계속 회자된다. 지금부터 100년 후, 사람들은 빌 게이츠를 뭐라고 기억할까? 마이크로소프트(MS)보다 '말라리아 문제 해결에 한 획을 그은 이'로 기억하는 이가 더 많을 것이다. 많은 이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었던 이'라고 기억되고 싶어 한다."

Getty Images / 멀티비츠

―'기부를 통해 사회를 바꾸겠다'는 흐름이 생겨난 이유는 무엇인가.

"과거에 비해 세계가 훨씬 더 가까이 연결됐기 때문이다. 비즈니스도, 교육도, 개인이 일하는 경험이나 관계 맺는 방식도 과거와 전적으로 달라졌다. 인터넷을 통해, 혹은 여행을 통해 지구 반대편 다른 곳의 삶이 어떤지 인식할 경로가 많아졌다. 그것이 다시 기부와 자선에 영향을 미쳤다. 또 공공 영역에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데 대해 사람들의 회의감이 커진 것도 큰 부분이다. 더 많은 이가 민간 영역으로 눈을 돌리고, 적극적으로 기여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아직 우리나라는 기부금 총액이 11조원 정도로, 세금을 통해 정부가 공공 영역에서 쓰는 예산(376조원)에 비해 규모가 턱없이 작다. 선진국에는 실제로 민간 영역에서 기부를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한 사례가 많이 있는지 궁금하다.

"2010년,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10년 내 모든 에너지를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대체하겠다'고 공언했다. 샌프란시스코 만(灣)의 특성을 이용한 '조력발전'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문제는 예산이었다.

당시 증명되지 않은 조력발전 기술에 많은 지방정부 예산을 쓰는 건 정치적 부담이 컸다. 논쟁도 상당했다. 그러나 민간 재단, 지역정부와 협력을 통해 펀드가 조성됐다. 돌려줄 필요가 없는 기부금 형태로 조성돼, 기술을 시험하는 데 쓰일 수 있게 했다. 당시 도입하고자 했던 모델이 성공적인 것으로 증명됐고, 이후 지역 내 여러 민간 투자자, 지역정부 예산 등을 통해 훨씬 큰 규모의 자금이 조성됐다. 정부가 뒷짐 지고 쳐다볼 때,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게 마중물이 된 셈이다.

세계 최대 자선 자문기관인 '록펠러 자선 자문단(Rockefeller Philanthropy Advisory)' 멜리사 버먼(Melissa Berman·사진) 대표

2008년, 민간 자선 펀드와 뉴욕 주정부 건강보건 부처가 협력해 ‘그린 카트 이니셔티브’ 프로그램을 도입했던 것도 좋은 사례다. 가난한 이들이 신선한 과일이나 야채를 섭취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며, 동시에 저소득층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사업이었다. 지역정부 예산만으로는 불가능했던 일인데, 민간 자원이 있어 가능했다. 기부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딱딱한 공공 예산에 비해, 시험해 볼 여지가 훨씬 더 크다. 다만 어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큰 목표를 가지고, 철저한 계획 아래 잘 쓰여야 한다. 더불어 성공적인 협업은 필수적이다. 문제는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고, 정부나 민간의 돈만으로 해결하기 힘든 것들이 대부분이다.”

―달라진 기부 흐름에 발맞춰, 비영리단체들의 움직임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은데….

“많은 비영리단체는 지금까지 ‘이런 문제가 있으니 기부하라’고 소통해왔다. ‘세상에 이렇게 힘든 아이들이 아직도 있다’ ‘장애인들은 여러 도움이 필요하다’는 식이었다. 기부자들은 ‘그래서 당신들은 지금까지 무엇을 했느냐’고 묻고 있다. 이제 비영리단체는 기부자들에게 문제를 나열하는 대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기부금을 받아 프로젝트만 하는 데서 스스로 만족하고 마는 게 아니라,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가는지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

비영리단체들 간이나 다른 주체들과 ‘협력’은 필수다. 자선활동이 사회적 변화로 이뤄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단체들끼리 협력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신들만 ‘유일하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비슷한 프로젝트들이 작은 규모로 여기저기서 이뤄져왔다.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문제는 크고 복잡하다. 대응하는 방식도 한 걸음 떨어져서 크게 볼 필요가 있다. 기부 생태계를 키우고 신뢰를 높이기 위해선, 객관적인 제3의 중간 조직이 많이 필요하다. 연구 기관이 될 수도 있고, 자선 자문 기관이 될 수도 있다. 비영리단체와 기부자 간에 서로의 언어를 잘 통역해서 알려주고, 기부자들이 신뢰할 수 있도록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해야한다. 비영리 영역의 핵심은 신뢰 기반이다. 투명성과 정확한 정보, 사업에 대한 정확한 측정은 신뢰를 쌓기 위한 가장 기본이다.”

록펠러 자선자문단(Rockefeller Philanthropy Advisory)

록펠러 자선자문단은 자선 전반에 대한 자문과 운영을 도와주는 비영리 기관이다. 록펠러 재단과는 완전히 별개다. 2001년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자문에 응한 기부금 규모만도 30억달러(약 3조2000억원) 이상이고, 매년 기부금 3000억원가량의 자문에 응한다. 전 세계 곳곳 기부금이 흘러간 나라만 해도 70여곳이 넘는다. 뉴욕,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에 사무실이 있다. ‘기부금 배분 기관’과 달리, 기부자 개인이나 기관이 스스로의 ‘필란스로피 로드맵(Philanthropy Roadmap)’을 짤 수 있도록 조언한다. 어떤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싶은지, 어떤 방법이 있을지를 고민하며 함께 기부의 방향을 잡아나간다. 방향을 잡을 때 가장 중요한 건 기부자의 아이디어다. 기부를 결심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지, 어떤 경험을 해왔고,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은지 등을 묻다 보면 그들이 기여하고자 하는 최종 목표가 자연스레 드러난다고 한다. 자문단 내 연구팀은 리서치를 통해 전반적인 전략 ‘로드맵’을 함께 수립한다. 어느 시기에 어디에 어떻게 기부금을 사용할지, 기존 어떤 단체들 간의 협력이 필요할지 등 큰 그림도 함께 그린다. 궁극적 목표인 ‘사회적 임팩트(impact)’를 만들어내기 위해, 사업을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한 지표도 시작 단계부터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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