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10시(현지 시각)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선 러시아의 2차대전 승전 70주년을 기념하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러시아 군악대가 2차대전 때 군가 '성전(聖戰)'을 연주하면서 열병식 막이 올랐다. 전쟁 당시 러시아 주력 부대를 필두로 중국 등 10개국의 파견 부대, 러시아 첨단 주력군이 차례로 붉은광장을 뒤덮었다. 이날 러시아는 병력 1만6000여명, 무기 194종, 전투기 143대를 동원해 사상 최대 규모의 열병식을 펼쳤다.
그러나 참석한 외국 정상은 27명으로 60주년 때와 비교해 절반 수준이었다. 70년 전 러시아 전우(戰友)였던 미국·영국·프랑스 등 서방 지도자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하며 대거 불참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중국·쿠바·몽골 등 옛 사회주의 진영만 참가한 '반쪽 행사'가 됐다.
이날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축사에서 2차대전 당시 중국의 공헌을 특정해 언급했다. 그는 "아시아의 주요 전쟁터였던 중국은 군국주의에 저항하며 수많은 생명을 바쳤다"고 평가했다. 전쟁으로 러시아는 2000만명이 사망했고, 중국은 3500만명이 죽거나 다쳤다.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나란히 앉아 열병식을 지켜본 데 이어 '무명용사의 묘'에 함께 헌화했다. 중국군 의장대 102명이 열병할 때도 두 사람은 같이 손을 흔들었다. 중국이 외국 열병식에 의장대를 파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러 해군은 우크라이나 앞바다인 흑해(黑海)에서 사상 첫 합동 훈련도 했다.
9일 오후 붉은광장에는 마오쩌둥(毛澤東) 초상화가 등장했다. 류사오치(劉少奇) 전 주석의 딸 류아이친(劉愛琴) 등 '훙얼다이(紅二代·혁명 2세대)' 30여명이 중공 지도자 7명의 사진을 들고 모스크바 시민과 함께 참전 용사를 추모하는 거리 행진에 나선 것이다. 중소(中蘇) 역사를 전공한 베이징대 김동길 교수는 10일 "마오 사진의 등장은 냉전이 본격화한 1950년대 중반 이후 60여년 만에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는 6·25 전쟁 직후인 1953~57년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밀착했다. 그러나 1958년 중·소 분쟁이 불붙으면서 모스크바의 마오 사진은 모두 철거됐다고 김 교수는 전했다.
중·러가 60여년 만에 다시 밀월(蜜月)을 선보이는 것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에너지 수출국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수출길이 막히면서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 반면 세계 최대 에너지 수입국인 중국은 러시아의 천연가스와 석유를 싼값에 도입하는 기회를 잡았다. 러시아 무기 거래는 중국에 남는 장사다. 중국이 '러시아판 사드(미사일 방어체계)'인 S-400을 동부 해안에 배치하면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 분쟁에서 미·일 동맹을 견제할 수 있다. 최근 미·일은 일본 자위대의 활동 영역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개정하며 중국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반면 중국이 '중국위협론'을 부추기면서 대가를 치를 가능성도 크다. 그동안 중국은 '평화 굴기(崛起·우뚝 섬)'라는 말로 주변국 불안을 달래왔다. 그러나 중·러가 경제뿐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밀착하게 되면 중국 주변국이 미·일 동맹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어질 수 있다. 실제 중국과 영유권 분쟁 중인 필리핀은 12일부터 일본 자위대와 남중국해에서 합동 훈련을 시행한다.
현재 중국은 자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출범을 앞두고 서방과 협력할 일이 많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중국의 최대 교역 대상이다. 러시아 편만 들다가 국제정치·경제적 실리를 놓치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시진핑 주석은 오는 9월 3일 중국의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전 열병식을 치르고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처럼 미 의회 연설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시 주석은 9월 방미를 계기로 미국과 러시아에 모두 미소를 보내는 '양다리 외교'를 선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