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산하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일본 남부 규슈(九州) 일대에 있는 탄광·항만·제철소 등 스물세곳에 대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기에 적합하다"고 판정했다. 우리 정부가 "강제징용한 장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반발해, 또 하나의 역사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논란이 된 스물세 곳은 1850~1910년대 건설된 산업시설과 교육시설이다. 일본은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 유산'이라 부른다. 사쓰마번의 봉건 영주가 제철·방적·조선사업을 펼치던 옛 슈세이칸(集成館)을 포함해, 일본이 보기엔 자랑스러운 유적이지만, 우리 입장에선 논쟁의 여지가 있다. 가령 야마구치현 쇼카손주쿠(松下村塾)는 일본 지식인 요시다 쇼인이 조선을 정벌하자며 '정한론'을 퍼뜨린 곳이다. 태평양전쟁 발발 후 조선인 5만7900여명이 강제노동에 시달린 현장 일곱 곳도 포함돼 있다. 특히 하시마(端島) 탄광은 섬 모양이 군함(軍艦)을 닮았다 해서 일명 '군함도'라 불렸다. 또 '지옥도'라 불리기도 했다. 조선인·중국인 광부들이 여기서 최저(最低) 1000m까지 해저 갱도를 파고들어가 하루 12시간씩 혹독한 노동을 강요당했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유력해 보이는 하시마 탄광(일명 군함도) 전경.

이에 따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5일 국회에 출석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위원국에 우리나라의 반대 입장을 피력하고 설득하겠다"고 밝혔다. 우리 외교부가 일본 외무성에 이달 중으로 당국자 협상도 제안했다. 이 시설들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더라도, 스물세 곳 중 일곱 곳에 대해서는 '강제징용 사실이 있었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도록 요구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해당 산업시설들은 2차대전보다 훨씬 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강제징용과 관계없다"는 입장이다. NHK는 일본 내각 관계자를 인용해 "(주변국의 반발은) 유산으로서의 가치와도 무관하다"고 보도했다.

일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집권하기 훨씬 전부터 이 사업에 공을 들였다. 2001년 다카시마(高島) 주민들이 "황폐화돼 가는 지역을 되살리자"며 하시마 탄광 등을 세계문화유산에 올리자는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2006년 전문가 그룹이 결성됐다. 2009년 일본 정부가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 이 산업시설들을 올렸다. 이런 사실은 한국에 3년 전인 2012년에야 알려졌고, 국무총리실 산하 민간위원회가 반대 입장을 밝히고 강제징용 사료를 공개했지만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사이 일본은 3000쪽이 넘는 방대한 보고서를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에 제출했다. 일본은 줄곧 "해당 산업시설들은 일본이 서양 기술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여 일본의 필요와 전통에 맞게, 자기 식대로 산업화한 역사를 잘 보여준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작년 10월 실사를 거쳐 '적합' 판정을 내렸다. TV아사히는 5일, 아베 총리가 '메이지 유산'이 무리 없이 등재되도록 유네스코 위원국에 친서를 보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의 반발과 무관하게, 일본 대중은 일본 산업시설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가능성에 크게 환호했다. 일명 '골든 위크'라 불리는 연휴(2~6일) 중간에 뉴스가 나와서 해당 시설에 더욱 관광객이 몰렸다. 요미우리신문은 5일 미이케 탄광을 찾은 방문객이 1458명에 달해, 작년 같은 시기보다 다섯 배 많았다고 전했다. 하시마 탄광을 오가는 유람선에도 이날 오전 일찍부터 예약 문의가 잇따랐다고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보도했다.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될지는 6월 말 결정된다.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내린 판정이 번복된 전례는 찾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