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정'을 통해 보는 역사] 선조는 왜 광해군을 세자로 인정하지 않았을까?

  • 디지틀조선일보 정신영

    입력 : 2015.04.30 10:53 | 수정 : 2015.04.30 10:54

    MBC 퓨전사극 '화정'이 속도감 있는 전개와 배우들의 연기력 호평을 받으며 인기를 얻고 있다. 광해군을 연기하는 차승원은 어렵게 얻은 왕위를 지키려는 마음과 자신의 이복 형제들을 상대로 피바람을 불러 일으키지 않으려는 마음 사이에서의 내적 갈등을 적절히 표출하며 시청자들로 하여금 극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역사는 이미 흘러갔고, 광해군이 그의 이복 형제들을 살해하는 비극적인 운명의 주인공임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광해군이 이런 비극적인 운명에 놓이게 된 이면에는 우선 선조와 조선의 조정이 그를 왕으로서 적합하게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선조는 마지막까지 광해군을 세자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을까?

    광해군이 탐탁치 않은 선조. 선조 앞에 무릎 꿇은 광해군이다. 출처: MBC '화정' 화면캡처

    <1> 광해군은 선조의 적자가 아니었다

    선조 본인도 방계 출신으로 왕위 계승에 많은 어려움 겪어

    선조는 조선 왕조 최초의 방계 출신의 왕이었다. 즉, 선대 왕인 명종의 아들이 아닌, 명종의 형제 덕흥대원군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덕흥대원군은 중종(명종의 아버지)이 후궁인 창빈 안씨를 통해 낳은 아들이었으므로 더더욱 왕위 계승에 걸림돌이 되었다. 하지만 명종이 34세의 어린 나이에 후사 없이 승하하면서 선조가 어렵사리 왕위에 올랐다. 선조 본인이 방계 출신으로 왕위를 계승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은 탓인지 그는 적자 승계에 대한 고집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폐가입진. 서자 광해군을 버리고 적자 영창대군을 세자로 세우고자 했던 선조. 출처: MBC 화정 화면캡처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직전까지 선조는 왕비를 통한 후사를 얻지 못했다. 후궁인 공빈 김씨와 인빈 김씨를 통해 낳은 아들인 임해군, 광해군, 신성군 등 밖에 없었는데, 이들은 모두 선조가 보기에 세자로 적합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조를 통해 국난을 극복해야 했으므로 마지못해 공빈 김씨를 통해 낳은 둘째 아들 광해군을 세자로 세우게 되었다. 첫째인 임해군은 난폭하고 왕으로써의 자질이 부족하였다.

    <2> 백성의 신임을 얻은 광해군을 시기하다

    광해군, 전란을 통해 백성의 신임 얻어

    광해군은 임진왜란을 통해 많은 공을 세웠고, 이로 인해 세자로서의 지위가 굳건해지는 듯 했다. 전쟁 발발 후 도망가듯 한양을 버리고 파천한 선조와 대비되게 광해군은 전쟁터를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전공을 세웠다. 이에 백성들은 광해군을 왕처럼 모시기에 이르렀고 이는 선조의 시기를 받는 계기가 되었다. 광해군을 세자가 아닌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존재로 여기게 된 것이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동안 백성들의 신임을 얻게 된다. 출처: MBC '화정' 화면캡처

    <3> 정실인 인목왕후를 통해 영창대군이 탄생하다

    명나라도 적자가 아닌 광해군을 세자로 인정하지 않아

    전란 후에 선조는 인목왕후를 왕비로 맞이하고, 드디어 적자인 영창대군과 정명공주를 얻게 된다. 당시 명나라에서도 광해군이 적자가 아닌 이유를 들어 세자로 인정하지 않았기에, 선조는 어린 영창대군을 세자 삼고 싶어한다. 선조가 나이가 많아 갑작스레 승하하게 되면서 결국 왕위는 광해군이 승계하게 되지만, 적자인 영창대군은 그의 왕위를 지키는데 있어 굉장히 위협적인 존재였다.

    인목왕후를 통해 낳은 영창대군. 출처: MBC '화정' 화면캡처

    어쩌면 광해군이 이복형제들을 죽이지 않고 조정을 안정적으로 이끌려고 했던 것은 헛된 꿈이었을지 모른다. 드라마 '화정'에서의 이들의 비극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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