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재·보궐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전패(全敗)하면서 지난 2월 출범한 문재인 대표 체제가 최대 위기를 맞았다. 새정치연합은 ‘성완종 리스트’ 파문 속에 치러진 선거에서 텃밭인 광주와 서울 관악을에서까지 패배하는 등 4곳 중 단 한 곳에서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이날 참패로 ‘이기는 정당’을 표방하며 출범한 문 대표의 리더십이 흔들리면서 문 대표의 대권 가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새정치연합은 선거를 앞두고 터진 ‘성완종 리스트’ 사건을 야권 분열이란 악재(惡材)를 만회할 호재(好材)로 보고 이 사건을 ‘친박 권력형 비리 게이트’라 규정하며 맹공을 퍼부었다. 문 대표는 선거 당일인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한) 어제 대통령의 답변에는 경제 실패와 무능에 대한 성찰, 수첩 인사에서 비롯된 인사 실패에 대한 반성, 불법 대선 자금에 대한 책임 등 세 가지가 없었다”며 “국민이 투표로 박근혜 정권의 경제 실패, 인사 실패, 부정부패 등 ‘삼패(三敗)’를 심판해 달라. 투표하지 않으면 심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은 야권 분열과 인물난을 넘지 못하고 지난해 7·30 재·보선 패배에 이어 올해 또다시 참패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선거는 인물·이슈·구도 세 가지로 결정되는데 ‘성완종 리스트’란 이슈 하나만으로는 야권 분열 구도와 인물난을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한국갤럽 조사에서 성 전 회장이 야당 의원들에게도 금품을 제공했을 것이라는 국민이 82%였다”면서 “국민들은 여야 모두에 문제가 있다고 봤기 때문에 ‘성완종 리스트’ 이슈가 야당 득표율을 끌어올리는 데까지는 도달했어도 판세를 뒤집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번 패배로 새정치연합 내에서는 문 대표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문 대표 측은 이번 선거가 정동영·천정배 전 의원의 탈당 등 야권이 분열한 가운데 통진당 등 야권과의 연대 없이 치렀고, 전략 공천 없이 당내 경선을 통해 공정하게 치른 만큼 당초 쉽지 않은 선거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의 한 중진 의원은 “이번 선거에서 이겨야만 이를 발판으로 내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에 경기 성남 중원 등에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 같은 경쟁력 있는 인물을 영입해 전략 공천해야 한다고 했는데도 지도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지도부의 선거 전략 부재가 선거 참패의 원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야권 분열 속에서 치러지는 선거에서 새정치연합이 승리하기 위해선 전략 공천이 필요했는데 문 대표가 당내 경선을 통한 공천 원칙을 고수함으로써 선거에 패배했다는 지적이었다.
문 대표가 당내 경선 원칙을 고수함에 따라 서울 관악을에서는 김희철 전 의원이 탈락하고 친노인 정태호 후보가 공천을 받았고, 경기 성남 중원에서는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 영입에 실패하고 재선의 새누리당 신상진 후보보다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정환석 후보가 공천을 받았다. 김희철 전 의원은 경선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등 강력 반발하며 선거 지원을 보이콧했다. 결국 새정치연합은 당의 뿌리인 광주뿐만 아니라 1988년 13대 총선에서 이해찬 의원이 당선된 이래 27년간 내리 야당이 독점해온 관악을마저 새누리당에 내주고 말았다.
앞서 문 대표는 지난 2·8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번에 당 대표가 안 되어도, 당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도, 총선을 승리로 이끌지 못해도 그 다음 제 역할은 없다. 세 번의 죽을 고비가 제 앞에 있다”고 했었다. 당 대표에 당선됨으로써 첫 번째 고비는 무사히 넘겼지만, 이번 재·보선에서 참패함으로써 문 대표는 지도력에 타격을 입었다.
문 대표는 취임 후 ‘유능한 경제·안보 정당’ 기치를 내걸고,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야당 대표로서는 처음으로 ‘북한에 의한 천안함 폭침’을 인정하는 등 당내 강경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중도·보수층 끌어안기에 나섰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문 대표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 주자 1위 자리를 지켰고, 당 지지율도 20% 후반대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이번 선거 패배로 문 대표가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구상해왔던 정책도 추진력을 잃게 됐다.
당 관계자는 “당초 고전이 예상됐던 선거였기 때문에 당장 문 대표의 사퇴까지는 요구하지 않겠지만 대권 주자로서의 이미지엔 타격을 입지 않았겠느냐”면서 “문 대표가 내년 총선까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선거 패배를 계기로 야권 재편 움직임이 가속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정동영 전 의원이 이미 진보정당을 표방한 국민모임에 합류했고, 앞서 정대철 고문도 지지층을 중도·보수까지 확장하는 중도 신당론을 주장한 바 있다. 또 야당 텃밭인 광주에서 승리한 천정배 전 의원을 중심으로한 호남 신당론도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