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6일 6박 8일간의 미국 방문길에 나섰다.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상·하원 합동연설(29일)을 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국빈 만찬(28일) 등 극진한 예우도 받는다. 보스턴과 워싱턴DC,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등을 찾는 아베 총리는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발표하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한 큰 틀의 합의도 이뤄내 양국 간의 끈끈한 연대를 과시할 것으로 보인다. 전후 70주년이라는 상징적 시점에 미국을 찾는 아베 총리는 "일본이 미국과 함께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떤 세계를 만들어갈 것인가 하는 비전을 말하고 싶다"고 출발 전 기자들에게 말했다. 결국 과거 식민 지배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진솔한 반성은 부족할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은 여전히 숙제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표적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일본 석좌인 마이클 그린 조지타운대 교수는 "미국 의회에서, 미국 청중을 상대로 연설하기 때문에 주 관심사도 미·일 동맹 강화에 맞춰질 수밖에 없겠지만, 한·일 관계 정상화가 한·미·일 모두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차원에서 꼬여 있는 관계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그린 교수와의 일문일답 요약.
―아베 총리의 이번 방미가 양국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미국과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동맹을 맺고 있다. 미·일 방위지침 개정안을 발표하고, 경제적으로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큰 틀에 합의한다면 최고의 성과가 될 수 있다. 미국 의회가 상임위 차원이긴 하지만 무역 신속협상권(TPA)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부여하기로 한 것도 좋은 조짐이다."
―일부에서는 미·일 동맹 강화나 집단자위권 행사 등을 통해 힘을 과시하다 보면 일본이 지역 패권을 차지하려고 욕심을 부릴 것이라고 우려하는데.
"절대 못 한다. 일본의 집단자위권이나 미·일 방위지침 모두 미군을 보호하고, 미국에 의존하는 구조다. 독자적인 능력을 키우는 게 아니다. 1930년대만 해도 일본은 독자적인 힘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일본의 군사력은 미국과 함께 하도록 설계돼 있다. 6·25 때 일본을 병참기지처럼 활용했듯이 미사일 방어나 정보 수집 같은 군사적 대처는 한반도 방어에 큰 도움이 된다. 미·일 동맹 강화가 한국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이해해주길 미국은 바란다."
―역사를 왜곡하고,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상황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팽창주의적 욕망이 살아나지 않을까.
"미국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 중국이 군사력을 키우는 상황에서 일본은 유지 정도 하는 거다. 1995년 이후 중국은 매년 15%씩 군사비를 증강해왔다. 7년이면 두 배가 된다. 일본은 같은 기간 2%만 늘렸다. 5년 뒤면 중국 해군과 공군이 한·일 군사력을 합친 것보다 커진다. 일본은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다."
-일본이 중국 변수를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이냐를 놓고 한국과 일본의 견해가 갈린다. 양국 전문가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 체계에는 모두 동의한다. 하지만 한국에 중국은 새로운 경제적 기회다. 교역량만 해도 미국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 더 많다. 북한을 다루는 측면에서도 중국이 필요하다. 게다가 한국에 중국은 직접적인 위협이 아니다. 반면, 일본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이 직접적이다. 군함이 동원된다. 일본은 중국과 함께 자신이 메이저 파워라고 생각한다. 지난 100년간 일본이 이 지역을 이끌었는데, 중국이 앞으로 자신이 하겠다고 나서는 형국이다. 이 때문에 충돌할 수밖에 없다. 한·일의 중국관이 다르기 때문에 인식 차이가 생긴다."
―이런 인식 차이가 지금의 한·일 관계 악화로 이어진 건가.
"너무나 부자연스럽게 나쁜 상황이 됐다. 중국의 부상과 아시아 지역의 경제 통합, 미국과의 동맹 관계 등을 생각하면 지금보다 훨씬 좋아야 한다. 중국은 동북아 패권을 새로운 중화주의를 표방하면서 차지하려고 한다. 미국의 장악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중국은 한·일 관계를 악용하고 있다."
―한·일 간의 난국을 어떻게 돌파해야 하나.
"한국과 일본 모두가 잘못된 인식들을 가진 게 있다. 일본에서는 '(과거사) 사과는 충분하다. 한국, 참 지겹다'는 인식이 점점 퍼져간다. 한국에서는 '이제 일본은 필요 없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과 하지 뭐'라는 생각이다. 다 틀렸다. 아베 총리는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한국에 최소한 과거사와 관련해 진전을 볼 것이라는 신호는 줘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그런 신호가 오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 간과 같은 극적인 관계 개선은 어렵겠지만, 단계적 접근법이 필요하다."
―한·일 관계를 이성만으로 해결하기에는 다른 요소가 많은데.
"일부 전문가는 한국이 왜 중국 편을 들면서 일본을 고립시키려고 하느냐고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반면 일부는 일본이 과거사 등에서 진솔한 사과를 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고립시키고 있다는 해석을 한다. 이런 식의 논쟁은 건강한 것이 아니다. 한·일 양국이 워싱턴에서 상대방을 손가락질하면서 제로섬 게임을 하면 양쪽 모두에게 손해다. 키신저 같은 전략가들이 양국 정부에 있다면 무조건 화해 전략을 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