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9박 12일간의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마치고 오늘 오전 귀국한다. 박 대통령이 페루에 있던 지난 20일 이완구 총리가 성완종씨로부터 30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에 책임을 지고 사의(辭意)를 밝히고, 박 대통령은 현지에서 이를 받아들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지금은 성씨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두 차례 특사(特赦) 특혜 의혹까지 더해지는 등 '성완종 리스트' 파문은 전방위로 번지고 있다. 그 사이 국회는 사실상 마비돼 공무원연금 개혁과 주요 민생경제 입법을 비롯한 핵심 국정 현안들이 좀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오늘부터 풀어나가야 할 난제들이다.

박 대통령 앞에 놓인 숙제는 세 가지다. 성완종 리스트 사태, 새 총리 인선, 그리고 공공 개혁이다. 박 대통령은 정치적 위기에 부닥치면 강한 역공(逆攻)으로 정면 돌파를 시도하곤 했다. 이번에도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핵심 측근들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이 불거지자 '여야(與野)를 가리지 않는 정치 개혁' 주장으로 대응했다. 틀린 얘기라고 할 수는 없으나 박 대통령이 앞장서 외치는 걸 국민이 공감할지는 의문이다. 리스트 관련자들이 모두 현 정권 실세들이고, 이들이 받았다는 돈의 용처가 박 대통령의 대선 후보 경선 자금 또는 대선 자금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밝힐지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대통령으로선 검찰에 특검 수준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수사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법무부 장관이나 청와대 비서실장·민정수석 등 검찰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참모들이 일절 수사에 간여하지 못하도록 단속해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에선 대통령이 총리를 고르는 것이 마치 지뢰밭을 건너는 것처럼 위험한 일이 돼버렸다. 과도한 낙마 공세 탓도 있지만 대통령의 인선 실패도 원인이었다. 더구나 지금은 다른 어느 때보다 새 총리의 도덕성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대통령의 인식이 절실하다. 그래야만 내 사람, 우리 편을 넘어서 널리 사람을 구하는 큰 변화가 가능하다. 지금 다시 총리 인준 문제로 국정이 교착 상태에 빠진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박 대통령은 공무원연금 개혁, 노동 개혁 등 공공 분야 개혁을 올해 안에 매듭짓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했다. 이 약속은 우리 사회가 여기서 주저앉느냐, 아니면 다시 일어나 신발끈을 맬 수 있느냐가 달린 문제다. 이 막중한 과제가 검찰 수사나 정치 소란에 묻힌다면 누구보다 대통령의 책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이 개혁의 동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독일 메르켈 총리는 2013년 총선에서 이기고도 안정적 국정 운영을 위한 연정(聯政)을 성사시키려고 야당 당사를 직접 찾아가 밤샘 토론을 벌였다. 박 대통령도 필요하다면 공무원 조직과 노동단체를 찾아가 며칠 밤을 새워서라도 설득해 동의를 끌어내야 한다. 대통령의 국정 추진력은 철 지난 사정(司正) 캠페인 같은 것이 아니라 그런 정치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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