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韓·美 새 원자력협정, 성과 있었지만 숙제도 적지 않다

조선일보
입력 2015.04.23 03:23

4년 6개월여를 끌어온 한·미 원자력협정이 22일 타결됐다. 1973년 체결돼 이듬해 발효된 현행 한·미 원자력협정은 불평등 조약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연료 재처리 등이 일체 막혀 있는 것은 물론 원전(原電) 수출과 기술 개발 등에서도 제약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제 원전 23기를 가동 중인 세계 5위의 원전 선진국이다. 이번 한·미 원자력 협상의 핵심 쟁점은 지난 40여년 동안 한국이 일궈낸 성과와 국제 위상의 변화를 어떻게 담아내느냐 하는 문제였다. 반면 미국은 아랍에미리트·대만 등 최근 다른 나라와 원자력협정을 맺을 때마다 '농축·재처리 포기'를 명시하는 '황금 기준(Gold standard)'을 적용해 왔다.

한·미가 이번 협상을 마무리 짓는 데 4년 6개월 넘게 걸렸다는 것은 그만큼 입장 차이가 컸다는 뜻이다. 새 협정은 어느 한 편의 주장이 완벽하게 반영됐다고 볼 수 없다. 미국은 이번 협상에서 한국에 대해 '농축·재처리 포기'라는 골드스탠더드 명문 적용을 포기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에 농축·재처리를 전면 허용한 것도 아니다. 한국은 원전 연료의 안정적 확보라는 측면에서 농축 권한을 강하게 요구했다. 이 문제는 '미국산 우라늄을 20% 미만으로 저농축할 때는 한·미 고위급 위원회를 통해 일정한 절차와 기준에 따라 추진할 수 있도록 한다'는 선에서 정리됐다. 신설되는 한·미 고위급 위원회에서 미국 측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우라늄 농축에 관한 금기(禁忌)를 허물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진전이라 할 수 있다.

새 협정은 사용후(後)핵연료의 재처리 문제에서 파이로 프로세싱(건식 재처리) 기술 개발을 위한 각종 실험과 해외 위탁 재처리를 허용했다. 이것 역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파이로 프로세싱은 현재 성패를 예측하기 힘든 실험 단계에 머물고 있는 기술이고 국내 일부 전문가도 반대 의견을 내놓고 있다. 또한 우리가 원전을 수출할 때마다 건건이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여러 규제 조항들을 대폭 정리했다.

새 협정이 우리의 핵 주권을 전면 보장해줬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의 핵 주권 주장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선 핵무장론으로 읽힐 위험마저 있다. 우리가 이런 목표를 추구하려면 한·미 원자력협정의 틀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한·미 동맹을 포기하고 국제적·경제적 고립까지 감수해야 하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협정은 지금껏 한국 원자력 에너지 분야의 발전을 가로막아온 일부 장애물을 제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야 원자력 에너지 주기를 완성하는 긴 여정의 첫발을 뗐을 뿐이다. 이 먼 길을 성공적으로 가려면 한·미 원자력 분야 협력을 강화하고 신뢰를 끌어올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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