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민원 콜센터… 手話로 "사랑해요, 고객님"

    입력 : 2015.04.20 03:00 | 수정 : 2015.04.20 03:28

    [청각장애인 상담사 3人, 사내 수화 배우기 모임 만들어]

    눈으로 듣고 손으로 말해 - 캠카메라·스마트폰 앱 이용
    영상으로 민원 안내·상담 "미묘한 표정까지 살펴야"

    수화 모르는 장애인들과는 - 입모양으로 알아듣지만
    여의치 않을 땐 '몸짓 소통'… 한건 처리 1시간 걸리기도

    지난 2월 말 110 정부 민원 안내콜센터와 한 통신사 콜센터 업무를 대행하는 '케이티스'(KTIS) 상담실에 영상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전화를 받은 이는 청각장애인을 위해 수화(手話)로 상담을 하는 송현채(26)씨. 하지만 작은 영상통화 모니터로 보이는 50대 청각장애 남성의 다급한 몸짓은 수화가 아니었다.

    "수화를 몰랐던 남성 분이 동네 주민센터에 가서 필요한 것을 손동작으로 표현했는데 직원들이 도통 무슨 뜻인지 몰라 제게 민원 전화를 걸었던 거예요. 그분이 손가락으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점을 찍고 뭔가를 쓰는 행동을 하셨는데, 순간 가족들 이름이 쭉 기재된 '주민등록등본'을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스물여섯 살 동갑내기 수화 3인방 중 백한솔씨가 모니터를 보며 수화 상담을 하고 있다. 사진 속 수화는 ‘사랑합니다’라는 뜻이다.
    스물여섯 살 동갑내기 수화 3인방 중 백한솔씨가 모니터를 보며 수화 상담을 하고 있다. 사진 속 수화는 ‘사랑합니다’라는 뜻이다. /케이티스 제공

    송씨의 말대로 주민센터 직원이 주민등록등본을 발급해 건네자 조금 전까지 답답한 마음에 얼굴을 찌푸리던 남성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 남성은 화면 속 송씨에게 "이게 맞다. 맞다"며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 회사에는 송씨와 더불어 스물여섯 살 동갑내기 백한솔·김애리씨가 '수화 상담사'로 일한다. 6개월에서 5년까지 경력을 가진 이들은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 민원인의 고충을 영상통화를 통해 '눈'으로 듣고 '손'으로 말해주고 있다.

    청각장애인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수화를 배웠다는 송현채씨는 "식사 때는 물론, 일과 후에도 여섯 식구가 수화로 대화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화 상담사가 됐다"고 했다. 수화는 그에게 또 다른 모국어인 셈이다. 김애리씨는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인 어머니를 따라 학창 시절부터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백한솔씨는 초등학교 시절 특별활동에서 처음 수화를 접해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

    16일 케이티스 사내 수화 모임 회원들이 서울 용산지사에 모여 수화를 연습하고 있다.
    16일 케이티스 사내 수화 모임 회원들이 서울 용산지사에 모여 수화를 연습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수화 민원 상담은 개인 컴퓨터에 캠카메라를 설치하거나 영상 상담 장치가 설치된 관공서 컴퓨터를 이용해 콜센터 홈페이지에 접속하거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아 '화상 상담'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일반 상담과 달리 수화 상담은 상대방의 미묘한 표정 변화까지 봐야 한다. 주로 정부 민원 상담 전화를 담당하는 송씨는 "건축업에 종사하는 40대 후반의 한 남성 상담객이 영상통화로 청각장애 때문에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절박한 표정과 눈빛으로 고충을 털어놓은 일이 있었는데, 그분의 얼굴을 보고 나니 더 열심히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목소리로만 사정을 들었다면 딱한 사정을 온전히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력 6개월의 초보 수화 상담사인 김씨는 얼마 전 한 고객과 상담을 마치고 "더 궁금하신 것이 없느냐"고 물었는데, 50대 남성 고객이 딸 같다며 수화로 "사랑한다"고 답했다. 김씨는 "눈앞에서 '아빠 미소'를 지으며 사랑한다고 하는데 어쩔 줄 모르겠더라"며 "베테랑 선배들이 그럴 때는 오히려 '저도 사랑합니다'라고 하며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노하우를 전해줬다"고 했다.

    전화를 걸어오는 고객 중에는 수화를 할 줄 모르는 청각장애인도 적지 않다. 이들은 보통 입 모양을 보고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몸짓까지 써야 한다. 이렇다 보니 일반 상담 전화를 한 건 처리하는 데 3~5분이면 충분하지만, 수화 상담은 15분에서 한 시간까지 걸린다고 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면 팔이 뻐근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세 사람은 수화가 말보다 더 큰 감동을 주는 언어라고 했다. 백씨는 "우리는 흔히 '형용할 수 없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이라는 수식어를 쓴다"며 "그만큼 표정이나 몸짓을 통해서 말이 전하지 못하는 부분의 의미를 더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세 사람은 최근 사내 수화 동아리 '수화 사랑'을 만들었다. 더 많은 사람이 수화에 관심을 갖고, 소외당하는 청각장애인들과 소통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지난달 회사 게시판을 통해 회원을 모집했는데 20여명의 동료가 함께하자는 뜻을 전해왔다.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가진 지난 16일 첫 모임에는 1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이날 '당신은 멋있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뜻의 간단한 수화를 배우며 첫걸음을 뗐다. '수화 사랑' 회원 정은정(44)씨는 "이번 기회에 제대로 실력을 쌓아 수화 상담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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