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영 칼럼] 얼마나 더 무덤덤해져야 하나

  • 송희영 주필

    입력 : 2015.04.18 03:20

    잇단 인사 실패와 무능에도 국민은 참고 힘 실어줬는데 국민 인내 '지지'로 해석했나
    비리 척결 외치다 발등 찍곤 '성완종 파동'에 한마디 없어… 국민과 대통령 점점 멀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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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희영 주필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되기 전에 당내 여성 의원들과 점심을 가졌다. 2010년 9월의 일이다. 그는 "충청도 사람들이 말이 느리다는데 춤을 추자고 할 때는 짧게 말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고 나선 "출껴?"라고 스스로 대답했다. 언론은 당시 박 의원이 이미지 변신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 농담을 할 때면 '편안하고 유연해졌다'고 해석한 보도도 있었다.

    철이 한참 지난 썰렁 개그는 그렇게 포장됐다. 그렇게 해서라도 박 의원과 월급쟁이들, 박 의원과 떡볶이집 주인 사이가 가까워지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그가 선녀(仙女)들이 뛰노는 구름 위에서 내려와 마트에서 카트를 세워놓고 주부들과 허접한 농담으로 수다를 떨어주었으면 좋겠다고 학수고대했는지도 모르겠다.

    대통령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래서 대통령과 보통 사람들의 거리는 좁혀졌는가. 그는 우리들과 같은 땅 위에 서 있는가. 그의 피부는 계절이 변할 때마다 우리들과 똑같이 기온의 변화를 느끼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들과 같은 언어로 대화하고 있는가.

    때로는 국가의 최고 지도자와 밑바닥 백성 사이의 거리는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쿠데타 직후 '조국 근대화'를 내걸었을 때 그 뜻을 제대로 아는 국민은 얼마나 됐을까. 몇 년이 지나 수출이 늘고 도시로 나간 시골 처녀들이 월급을 고향에 보내올 때에야 비로소 농사보다 더 돈벌이가 잘되는 일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근대화란 바로 돈벌이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게 됐다.

    김영삼 대통령이 '문민 정부' 간판을 달고 역사 바로 세우기에 나섰을 때도 '저게 무슨 말이냐'고들 했다. 그가 육군의 하나회 인맥을 숙청하고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을 감옥에 집어넣는 것을 보고 나서 '문민(文民)'이 품고 있는 뜻을 받아들였다.

    이렇듯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거리는 시간이 갈수록 좁혀져야 한다. 그러나 이번 정권은 스스로 멀어지려고 애쓰는 것일까. 대선 때 '국민 행복'을 걸었다가 집권 후에는 '창조경제'를 앞세웠다. 한동안 '국가 개조'를 말하더니 '4대 개혁'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비리 척결'에 '정치 개혁'까지 들고 나왔다. 목적지가 시시때때로 바뀌면서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지 애매해졌다. 어수선한 스토리에 관객들은 극장을 떠나 흩어지고 있다. 성인 영화를 보며 '그래도 언젠가 결정적인 한 방이 터질 것'이라고 참고 있는 소수의 단골 고객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국민은 그래도 무던히 애를 썼다. 국무총리·장관 후보들이 나올 때마다 안 냈던 세금을 인사 청문회 직전에 납부하는 꼴을 보고서도 '이제라도 납부했으니 됐다'고 넘어갔다. 이제 위장 전입한 것쯤은 애교로 받아들이게 됐다. 논문 표절은 한자리하려는 인사들의 필수 스펙으로 눈감아주고 있다. 숱한 인사 실패를 겪으며 모두들 무덤덤해지고 말았다. 아니, 무덤덤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을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2013년 가을엔 친박 좌장(座長) 서청원 의원, 작년 7월엔 대통령의 입 이정현 의원을 보궐선거에서 당선시켜주며 집권 세력에 힘을 실어주었다. 세월호 참사 후 치러진 2014년 지방선거 때는 다시 새누리당의 손을 들어주었다. 집권당의 기적 같은 연승(連勝) 뒤에는 언제나 '웬만한 건 참고 가자'는 인내심 강한 국민이 있었다. 대통령을 차마 탓할 수 없어 "지지리도 부하 복(福)이 없다"고 괜히 아랫사람들의 무능을 책망하며 참고 견디었다.

    그런 국민의 무덤덤과 인내를 적극 지지로 해석한 것일까. 정윤회 문건 파동으로 문고리 권력을 내치라는 여론에는 '묵묵히 고생하며 자기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로 옹호하며 딱 잘라 거절했다. 성완종 파문에서도 측근들의 비리 의혹에는 유감 표명 한마디하지 않은 채 정치 개혁만 강조한 뒤 비행기에 올랐다. 뇌물 영수증을 봐야 사과하겠다는 것인가.

    취임 초에는 대선 공약을 135개로 추스르며 국민과의 약속을 모두 실행할 기세였다. 하지만 그토록 집착하던 무상 보육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공약을 다 실행하지 못하게 된 것도 사과하지 않았다. 세월호 사고 직후엔 국민이 사과를 기대할 때 하지 않다가 뒤늦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우리는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살지만 사회적 언어를 배우는 학창 시절을 청와대에서 보낸 경우엔 그런 단어는 생략하거나 늦게 해도 된다고 여기는 것일까.

    취임 첫해는 총리·장관 후보, 수석들이 줄줄이 낙마하는 인사 실패로 보냈다. 취임 2년째는 세월호 후유증을 감당하지 못해 부대꼈다. 취임 3년째는 제 발등 찍힐 줄 모르고 비리 척결을 밀어붙이다가 '자살 폭탄'이 되고만 성완종 파동을 보며 보내야 할 판이다. 국민은 이제 썰렁 개그에도 웃을 수 없다. 우리는 얼마나 더 무덤덤해져야 하는 것일까. 인내심을 무한대로 가져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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