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時限, 앞으로 5년… 할머니들 살아계실 때 해결해야"

입력 2015.04.15 03:00 | 수정 2015.04.15 04:38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인터뷰]

위안부, 식민지 시대 벌어진 가장 잔혹한 일…
이 문제 풀지 못한다면 韓·日 갈등 사라지지 않아

아베, 위안부 부정해왔지만 총리로서 해결 나서야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13일 본지 인터뷰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한·일 관계에 대해 말했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13일 본지 인터뷰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한·일 관계에 대해 말했다. 그는“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한·일 역사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며“생존자가 살아있는 동안 화해하지 않으면 영영 문제를 풀 수 없게 된다”고 했다. /마이니치신문 제공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한·일 역사 갈등을 해결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역시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지금 일본 사회가 갈림길에 서 있다는 점이다. '일본이 뭘 해도 어차피 한국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길과 '그래도 뭔가 하겠다'는 길이다."

13일 일본 도쿄에서 만난 와다 하루키(和田春樹·77) 도쿄대 명예교수는 "특히 정치인과 핵심 관료 중에 첫째 부류가 계속 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사를 전공한 역사학자 입장에서 일본 정부의 우경화를 비판해왔다. 1995년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위해 출범한 '아시아여성기금'의 발기인 겸 사무국장을 지냈다. 이 단체는 민간기금으로 출범했지만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총리가 이사장을 맡았다.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일본 국민이 모은 성금을 전달하려 했지만, 다수의 피해자가 일본 정부의 정식 배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와다 교수는 태평양시대위원회 초청으로 방한해 16일 '한·일 친선의 세계사적 의의'를 주제로 성균관대에서 강연한다.

―한·일 관계가 나빠진 이유를 어디에서 찾나?

"아베 총리가 집권한 뒤 위안부 문제의 잘못을 인정한 '고노 담화'와 식민지 지배의 잘못을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이 강력하게 반발하자, 일단 무라야마 담화는 계승하기로 했지만 고노 담화는 좀처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고심 끝에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는 카드를 냈다. 아베 총리가 여기 응하지 않아 갈등 국면이 됐다. 그 뒤 아베 총리가 고노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밝히긴 했지만, 박 대통령이 원하는 다음 방향으로 한 발짝 더 내딛으려 하진 않고 있다."

―아베 총리는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 여부에 특히 집착하는데.

"위안부 문제가 대두된 초기에 한국에서 '(일본 군경이 한국 여성을) 노예 사냥하듯 끌고 갔다'는 주장 등이 널리 퍼졌다. 이런 주장에는 명백히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 일본의 일부 우익 성향 학자들이 (그런 초기의 오류를 빌미로) '총칼로 끌고 간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고 나아가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주장으로 확대했다. 아베 총리도 이런 논리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많은 연구를 보면 대부분의 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본군의 위탁을 받은 업체에 다양한 수단으로 동원됐다. 이런 업체가 해당 여성들을 일본군 소유 선박에 태운 다음, 중국과 동남아의 일본군 위안소에 끌고 갔다. 군 위안소에서 강제적으로 생활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를 언제 어떻게 처음 알았나.

"1950년대 재일 동포 소설가 김달수(1919~1997)가 쓴 '현해탄'이란 소설을 읽었다. 거기에 위안부 얘기가 나온다. 이 문제야말로 식민지 시대에 벌어진 '가장 잔혹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증언도 없고, 제대로 연구하는 사람도 드물었다. 1991년에 나온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 모든 걸 바꿔놨다. 그 증언의 여파로 1993년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인정한 고노 담화를 내놨다. 이어 1995년 무라야마 담화로 위안부 문제의 원인이 된 식민지 지배를 사죄했다. 지식인들이 정치인들과 관료들을 설득해 아시아여성기금을 만들었다."

―하지만 기금은 한국에서 오히려 반발을 샀다.

"당시 일본 정계 3분의 1은 '국가 명의로 식민지 시대를 반성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젊은 정치인들의 리더였던 아베 총리도 그중 하나였다. 대장성도 반대했다. 기금 측 인사들은 '뭐라도 해야 한다. 불충분한 조치라도 일단 시작하자'고 생각했다. 일본 국민의 성금을 '보상금' 명목으로 일본 총리의 사과 편지를 곁들여 피해자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이것이 한국을 되레 격분시켰다. 많은 할머니가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가 아니라면 이런 돈 필요 없다'고 했다. 한국에서 '아시아여성기금은 결국 피해자를 속이려는 책략에 불과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결코 그렇진 않았다. 한정된 조건에서 진심으로 노력했다. 다만 한계를 넘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위안부 문제를 풀 '기회'였다. 그걸 놓쳤다. 내 책임도 크다."

―위안부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존재가 행동을 결정한다. 아베 총리가 비록 개인적인 신조는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총리니까 결국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총리는 한·일 관계를 호전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 자리다. 사실 아베 총리는 위안부 문제를 20년째 부정하고 있는데, 그만큼 오래 천착해 오다 보니 이젠 일본 정치인 중에 아베 총리만큼 이 문제를 잘 아는 사람도 없다. 어떤 의미에선 '프로페셔널'이 다 됐다고 할까. 그런 사람이 생각을 바꿔서 '위안부 문제를 풀자'고 하면, 우익도 토를 달 수 없을지 모른다. 그가 동북아 첫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시간이 5년 정도 남았다."

―왜 5년인가?

"지난 5년 동안 할머니들이 마흔 분 넘게 돌아가셨다. 앞으로 5년 안에 또 그만큼 돌아가실 것이다. '이제 됐다, 납득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당사자밖에 없다. 할머니들이 다 돌아가시면 관계없는 사람끼리 남아서 이야기하게 된다. 그럼 정쟁이 된다. 해결이 영영 요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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