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가 된 철책… 전시는 통일되는 그 날까지

입력 2015.04.14 03:00

-광복 70주년 '더 라인…'展
분단 상징인 민통선 철책 위 유영호·한성필 등 작가 8명 300여m 구간에 작품 설치해

지난 10일 살랑이는 봄바람에 몸을 싣고 자유로에 올랐다. 서울 광화문에서 1시간 20분 만에 도착한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남북 대치를 코앞에 둔 유원지에선 놀이기구 바이킹이 시계추 운동 중이다. 분단마저 유희(遊�) 대상이 된 모순된 풍경 구경도 잠시. 군으로부터 출입 허가를 받은 버스로 갈아타고 검문소를 거쳐 통일대교 옆 민간인통제구역(민통선)으로 들어섰다.

탁 트인 시야 안으로 새싹 돋은 들녘이 들어온다. 하지만 가시철사 친친 감긴 철책선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날카로운 가시가 목에 턱 걸린 것처럼 상춘(賞春)의 여유는 싹 가신다. 그런데 올봄은 좀 다르다. 한때 고압 전류가 흘렀던 이곳 철책선 일부가 '캔버스'로 바뀌었다. 광복 70년, 분단 70주년을 기념해 10일부터 '더 라인(the LINE) 2015―통일, 그 앞에 서다'전이 시작됐다. 유영호, 한성필, 박선기, 노준, 나점수, 김지현, 류신정, 임도원 등 작가 8명이 만든 예술 작품이 거친 철책선 위를 수놓았다. 철책선을 따라 300여m 걷는 동안 돌부리 걸리듯 작품을 마주하게 된다.

3D 프린트로 만든 임도원의 작품‘바람’. 바람(風)에 흔들리는 작은 설치물을 통해 통일을‘바라는’마음을 중의적으로 표현했다.
3D 프린트로 만든 임도원의 작품‘바람’. 바람(風)에 흔들리는 작은 설치물을 통해 통일을‘바라는’마음을 중의적으로 표현했다. /김미리 기자
분단은 곧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자, 우리 역사다. 작가 김지현의 부친은 강원도 철원 출신으로 6·25 때 인민군으로 참전했다가 반공포로로 잡힌 뒤 국군으로 전향했다. "작품 준비하는 내내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을 했습니다. 이데올로기 소용돌이 속에 비극적 삶을 살았던 아버지 세대의 고통을 잊지 않아야겠다, 몇 번이나 되뇌었지요." 그는 절규하는 인간 군상을 새긴 조각 'No more, No more'를 철책에 붙였다.

조각가 유영호도 실향민 가족. 아버지가 평북 박천 출신이다. "외국 사진가가 박천을 찍은 사진이 있어 아버지께 보여 드렸더니 '내가 아는 고향 모습이 아니다'며 눈시울 붉히셨지요." 아버지는 '조금이라도 고향 땅 가까운 데 살겠다'며 돌아가실 때까지 연고도 없는 강원도 양구를 떠나지 않았다. 유영호는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를 양쪽으로 깊이 새긴 푯말을 세웠다. '서로 절대 안녕하지 못한' 남북 각각에 던지는 자문(自問)이자, 대치 상황을 뒤트는 풍자다.

사진가 한성필은 남양주 종합촬영소에 있는 영화 'JSA' 세트장을 찍은 사진으로 철조망을 둘렀다. 허구(세트장)를 찍은 허구(사진)를 실재하는 장소(철책)에 설치했다. 분단이 이미지로 소비되는 현실을 포착한 것이다. 작가의 조부는 6·25에 참전했다가 실종됐다. "때마다 아버지께서 DNA 채취를 하지만 아직도 할아버지 유해를 찾지 못했다. 전시를 계기로 가족사에 새겨진 비극을 곱씹어 보게 됐다"고 한다.

한성필의 사진 설치작품‘팩션(Faction)’. 영화‘JSA’의 촬영장 세트를 찍어 천에 프린트한 사진을 철책선에 걸었다. 분단을‘이미지’로 받아들이는 모순을 보여주기 위한 작품이다.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아‘판문각’이란 현판을‘통일각’으로 대체한 부분이 눈에 띈다.
한성필의 사진 설치작품‘팩션(Faction)’. 영화‘JSA’의 촬영장 세트를 찍어 천에 프린트한 사진을 철책선에 걸었다. 분단을‘이미지’로 받아들이는 모순을 보여주기 위한 작품이다.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아‘판문각’이란 현판을‘통일각’으로 대체한 부분이 눈에 띈다. /한성필 제공
이번 전시는 올해로 3회째. 3년 전 시작됐지만 안보상 이유로 언론과 일반에 공개되지 못했다. 올 설치 작품 8점을 포함해 지금까지 26점이 철책선에 붙어 있다. 관람에 제한은 있지만, 관람 자체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경기관광공사에서 매월 넷째 주 일요일에 여는 'DMZ 자전거 투어' 코스에 이 '철책 전시길'이 포함돼 있다. 군부대와 협의해 주말마다 한시적으로 일반에 개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전시 폐막일은 '통일되는 날'이다. 전시를 기획한 이동재 '더 공감' 대표는 "분단의 상징인 철책이 더 이상 필요 없을 때까지 예술가의 실험이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통일이 빨리 올수록 철책선에 걸리는 작품 수가 적어진다는 얘기. 철책에 나부끼는 예술을 보며 기도했다. 이 '역설(逆說)의 전시'가 빨리 막 내리기를, 이 '모순의 역사'가 끝나기를. 문의 (02)2268-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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