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미래] 아동의 삶 만족도 OECD 꼴찌 한국 오명 벗는다는데…

입력 2015.04.14 03:00 | 수정 2015.04.14 11:13

국내 첫 아동정책 기본계획, 실효성 가지려면

놀이터 규제 손보고 위기 아동 보호시설 확충 등
법·인프라 뒷받침 필요

과제 우선순위 정하고 중·장기적 청사진 그려야
정책 시행 관리·평가하는 법무처 컨트롤타워 필요
구체적 예산 확충 방안 마련도

아동복지정책
우리나라가 아동정책의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를 세운다. 정부는 UN아동권리헌장에 근거해 '행복한 아동, 존중받는 아동'을 비전으로 삼고 국내 최초의 아동정책 기본계획 확정안을 이달 내 발표할 예정이다. 그간 어린이안전종합대책(행정자치부), 어린이환경보건종합계획(환경부), 유아교육발전기본계획(교육부) 등 파편적으로 나뉘어 있던 아동정책들을 통합해 만들어지는 첫 기본계획이다.

미국의 아동정책을 통합 주관하는 아동국(Children's Bureau) 창설(1912년)과 비교해 100년이나 늦은 시작, 기본계획이 더 실효성을 갖고 아이들의 삶을 바꿔줄 방법은 없을까. 국내 아동 분야 전문가 10명에게 지난 2월 발표된 시안을 바탕으로 더 나은 아동정책 기본계획을 위한 조언을 들었다.

◇기본계획 4대 과제 '역량 강화·보건·안전·사회적 지원', 실효성 점검 위한 성과지표도 마련

이번 계획의 목표는 10년 이내에 우리나라의 아동 행복도를 OECD 평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앞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3년 한국아동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아동 삶의 만족도는 60.3%로 OCED 국가 중 꼴찌를 기록했다.

유엔 아동권리헌장을 바탕으로 한 정책 과제는 '미래를 준비하는 삶(역량강화)' '건강한 삶(보건)' '안전한 삶(안전)' '함께하는 삶(사회적 보호·지원)' 등 4개 부문으로 나뉘었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아이들의 놀이·여가권 보장이다. 특히 중앙부처와 지자체·교육청·NGO가 함께하는 '놀권리 헌장'이 국내 최초로 제정될 예정이어서 현장의 기대를 모았다. 임신·출산 지원을 위해 필수 의료비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를 확대하고, 자살·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의 보장 범위를 넓히는 방안도 공개됐다. 놀이시설·보육실·학교 등을 대상으로 무료 환경 안전 진단도 확대 실시할 예정이다.

추후 기본계획의 시행 결과를 평가할 수 있는 성과지표도 담겼다. 공통 성과지표에는 삶의 만족도와 행복지수, UN아동권리협약 권고사항 이행률이 포함됐다. 영역별로는 아동 결핍 수준, 모유 수유율, 0~19세 결핵 신환자 수, 10~19세 자살률, 안전사고 사망자 수, 빈곤 아동 삶의 만족도, 소년범 재범률 등이 성과지표에 반영될 예정이다.

◇기본계획 시작 전 인프라 구축하고 법 개정 해야

아동복지정책 연대기
빈틈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기본계획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인프라 확충과 법제 개편이 앞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기본계획을 통해 놀권리 헌장을 만든다고 해도, 정작 아이들이 밖에 나가 놀 곳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지난달 복지부에 제출한 의견에 따르면 지난 1월 어린이 놀이시설 안전관리법에 의해 전국 2000여개 놀이터가 폐쇄됐다. 현행 시설안전기준만 고수하다가는 시안에 모범 사례로 거론된 일본, 독일과 같은 창의적 놀이시설은 설치가 불가능하다는 것.

위기 아동 보호도 마찬가지다. 마땅한 일시 보호시설이 없는 상황에서 기본계획이 아동보호체계 강화를 아무리 언급해도 실행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안전한 삶' 관리지표 중 현재 33.6%에 그치는 고속도로 유아 카시트 착용률 제고 역시 강력한 법적 제제를 필요로 한다. 유아용 카시트 착용률이 90%가 넘는 미국은 체중과 나이에 따라 카시트 설치 방법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다. 벌금도 최대 400달러(약 43만원)까지 부과한다. 반면 국내 도로교통법상 유아용 카시트 관련 조항은 '6세 미만 동승자에게 유아 보호용 보장구 안전띠를 매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전부다. 과태료도 3만원 수준에 그친다.

'아동정책 기본계획 수립 지원 연구(2014)'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던 고석 한국어린이안전재단 대표는 "환경적 요인이 중요한 과제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강력한 법적 제재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기본계획 시안이 과제별 우선순위 없이 중장기적 목표와 사업 방향만 죽 늘어놓아 명확한 청사진이 그려지지 않는 점도 문제로 제기됐다. 정책별 중점 추진 전략은 무엇인지, 어떤 순서와 규모로 사업이 진행돼야 하는지 직관적으로 정리해야 기본계획의 방향성이 명확해진다는 지적이다.

신미혜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한국아동정책연구소장은 "발표된 시안에는 위기 아동 보호나 빈곤 아동 지원 등 시급하게 예산을 투입해 시행해야 하는 영역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반영되지 않았다"면서 "계획 단계에서부터 어떤 대상에 어느 과제의 정책이 먼저, 더 많은 예산과 역량으로 투입돼야 할지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본계획의 대상층인 아동에 사각지대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사회적 보호와 지원이 필요한 아동으로 빈곤 아동, 장애 아동 등 10개 범주를 거론한 가운데 이주 아동이 누락됐다는 것. 기본계획이 '국내에 거주하는 만 17세 이하(만 18세 미만)의 모든 아동을 대상으로 한다'고 명시한 만큼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아동권리옹호부장은 아동복지법 2조(출생 지역, 인종 등에 따른 차별 금지)를 거론하면서 "미등록 아동을 포함한 이주 아동이 기본계획의 대상임을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기본계획이 모든 아동을 차별 없이 끌어안으려면 더 포괄적인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황옥경 서울신학대학교 보육학과 교수·아동권리학회 학회장은 "빈곤 아동, 이주 아동 등 대상을 구체화하려 할수록 누락되는 아동이 생길 것"이라면서 "기본계획은 모든 아동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원칙 아래에서 국가의 아동 철학을 담는 데 더 충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효성 높이려면 강력한 컨트롤타워 구축, 예산안 마련 급선무

여러 부처에 걸쳐 시행될 기본계획이 추진력을 가지려면 강력한 범부처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기본계획 시안에 따르면, 아동정책조정위원회가 이행 관리와 평가, 부처별 대책을 조정하는 역할로 언급됐지만, 2007년부터 이명박 정부 기간 동안 한 차례도 열리지 않다가, 지난해에 와서야 소집될 만큼 유명무실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지표 점검을 통한 모니터링 기능을 강화하려면 상설기구 형태의 사무국 설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현철 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총리와 각 부처 장관들로 구성된 조정위원회가 구체적인 사업 영역까지 관리, 감독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아동정책의 경우 복지부 아동복지정책과와 여성가족부 청소년정책과가 만나는 식의 과 단위 실무협의회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보직 변경으로 인사 이동이 잦은 공무원이 아동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통찰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전담 인력 배치와 훈련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예산 계획이 불분명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정책 실행에 필요한 예산을 어디서 확충할 것인지, 얼마만큼의 규모로 어떤 사업에서 어느 주체가 집행할 것인지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16년까지는 구체 사업의 타당성을 조사하는 수준에 그쳐, 현 대통령 임기 안에는 실제로 예산이 투입되는 중점 사업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아동보호' 같이 시급히 예산이 투입돼야 할 영역들이 있다"면서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산과 정부의 시행 의지"라고 꼬집었다.

그간 턱없이 부족했던 아동정책 예산은 우리 정부에서 생각하는 아동 문제의 위상을 보여준다. 참여연대가 발표한 '2015년도 보건복지부 예산안 분석'에 따르면, 올해 보건복지 예산 52조원 중 보육 관련 예산을 제외한 전체 아동복지 예산은 약 2400억원. 전체의 0.46%다. 정익중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 복지법상 어쩔 수 없이 내놓은 기본계획이 되지 않으려면 실현을 위한 예산이 반드시 책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도움말 주신분: 고석 한국어린이안전재단 대표, 김경희 유니세프한국위원회 기획조정본부장, 김현철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 노충래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송복순 부스러기사랑나눔회 상임이사, 신미혜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한국아동정책연구소장, 이봉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익중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황옥경 서울신학대학교 보육학과 교수·한국아동권리학회장 (이상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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