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밑바닥에서 출발한 사람이라 두려울 게 없고…."

하창우(61) 대한변협 회장은 양복 안주머니에서 꾸깃꾸깃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올 초 변협 회장 당선 직후 기자회견을 위해 적어둔 사법 개혁에 관한 쪽지였다. 아직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게 별나보였다.

"처음 고용 변호사를 할 때 판사들이 '사법연수원 출신이 맞나?'며 내게 대놓고 말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나? 내가 판검사 경력 없이 변호사를 하니 무시하는 말이었다. 그런 설움 속에서 고용 변호사 5년·개업 변호사 25년을 했다. 밑바닥에서 있어 봐야 법조계의 잘못되고 뜯어고쳐야 할 관행이 보인다."

돈 많은 변호사들의 친목 단체쯤으로 여겨온 대한변협이 요즘처럼 뉴스메이커가 된 적은 없었다. 화려한 판검사 경력이 없는 '재야(在野)' 변호사인 그를 회장으로 뽑으면서다. 그는 이미 서울변협 회장 시절 '법관평가제'를 도입해 법원을 압박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전직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 제한'과 '검사 평가제'를 들고나왔다.

"지금까지 변협 회장들은 '전관(前官)' 출신이라 이런 문제를 안 느꼈을 것이다. 뭐, 알아도 말하기 곤란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걸 방치하면 결국 피해는 주권자인 국민이 본다. 성완종 회장의 죽음이 그런 경우다. 검찰의 조사 관행과 무관치 않은 것이다."

그는 주변을 돌아보며 자신의 발언을 조절하는 유형이 아니었다.

하창우 변협 회장은“내가 사법개혁을 주장해서 그렇지 정치 성향은 보수다”라고 말했다.

―성완종 회장이 검찰 조사를 받을 때 변호사가 배석한 것으로 아는데.

"검사실에서 변호인은 피의자 바로 옆에 앉지도 못하고 뒤에 떨어져 앉아 검사가 심문하는 걸 지켜볼 뿐이다. 변호인이 심문 과정에서 도와줄 수 없게 돼 있다."

―검찰 심문 과정에서 피의자가 변호인과 상의할 수 없다는 뜻인가?

"검사의 허가를 받아야만 변호인이 피의자를 도울 수 있다. 검사가 허락 안 하면 참여할 수 없다는 뜻이다. '검찰사무규칙'에 그렇게 못 박아 놓았다."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헌법에 보장돼있지 않나?

"그게 검찰 심문 과정에서만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검찰과 정기 간담회를 할 때마다 몇 번이나 시정 요구를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번에도 피의자의 인권이 보장된 검찰 조사가 이뤄졌는지 의문스럽다."

―성완종 회장의 죽음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받은 인격적 모멸감 등에 기인했다기보다, 자신에게 등돌린 정치권 실세에 대한 감정이 더 작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발단은 검찰의 표적 수사였다. 그렇게 안 했으면 이런 상황까지 안 왔다."

―해외 자원 개발 비리가 포착돼 수사를 진행해온 게 아닌가?

"청와대의 하명을 받고 이완구 총리의 담화 발표까지 있자 국가 사정(司正) 차원에서 한 것이다. 해외 자원 개발에서 국고 지원금 300억원을 횡령한 걸로 봤는데, 검찰은 이를 입증할 증거를 잡지 못했다."

―언론에는 그런 비리 혐의가 드러나 성 회장이 구속될 것으로 보도됐는데.

"매스컴에서는 그렇게 봤지만, 검찰은 국고 횡령 증거를 잡지 못했다. 그러자 수사 방향을 비자금 조성·사기·분식회계로 틀었다. 소위 '별건(別件) 수사'를 한 것이다. 당초 계획대로 안 나오니까 다른 비리에 손을 대 묶으려고 한 것이다. 이런 식의 '별건 수사'에 안 걸리는 기업인은 거의 없다. 성완종씨 입장에서는 '왜 내가 표적이 됐나?'라고 억울할 만했다."

―이제 '성완종 리스트'에 관심이 쏠리면서, 검찰은 이런 비판에서 비켜났다.

"검찰의 수사 관행은 면책이 된 느낌이 있다. 수사권과 기소 독점권을 갖고 있는 검찰만큼 힘센 조직이 없다. 올해부터 변호사들은 자신이 접한 검사들에 대한 '검사 평가제'를 실시해 공개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라도 견제해야 한다."

―'성완종 리스트' 수사는 어떻게 될 것으로 전망하나?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수사가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대상이 현정권 실세들이라 지금 검찰로는 한계가 있다. 처음부터 '특검'으로 가는 게 옳다."

성완종 회장의 자살이 있기 전만 해도, '전직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 제한'이 쟁점 뉴스였다. 그가 차한성 전 대법관이 제출한 변호사 개업 신고서를 반려하면서 '전관 비리 방지'와 '직업 선택의 자유 침해' 사이에서 논란이 일어났다.

―'직업 선택의 자유'를 명시한 헌법에 어긋나는 것은 인정하나?

"엄격하게 말하면 헌법에 보장된 '영업의 자유'를 제한한 것이다."

―법을 무시하면서 개업을 막아도 되는가? 변협이라는 조직이 개인에게 가하는 압력처럼 비친다.

"대법관 출신은 소송 서류에 도장만 찍어주고 3000만~5000만원을 받는다. 대법관까지 올라간 분이 비리 행태로 돈을 벌어서야 되겠나. 의뢰인들은 없는 돈을 털어넣거나 대출해서 바친다. 이렇게 눈앞에서 당하고 있는데 가만히 있어야 하나."

―아무리 명분이 옳아도 변호사는 법에 의지해 법을 취급하는 직업이다. 그런 단체에서 먼저 법을 어기면 법이 설 자리가 있겠나?

"법을 따지면 할 말이 없다. 법을 만들어 막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그 과정이 너무 오래 걸리고 성사될지도 미지수다. 아마 그런 법이 헌법재판소에 올라가면 헌법재판관 자신들과도 관련된 문제라 '위헌'이 될 것이다. 법을 만드는 것보다, 대법관 출신은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는 그런 전통·문화를 만들고 싶다."

―변협은 '김영란법'에 대해서는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고, '위헌 요소가 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 잣대에서 자신을 돌아보면 어떤가?

"우리가 그런 법률을 만든다면 위헌이니까, '말'로써 설득하고 있다."

―개업 신고를 퇴짜 맞은 차한성 전 대법관으로서는 헌법에 보장된 자유를 침해받은 게 아닌가?

"그분이 이를 법정으로 끌고가면 법적으로 가려야겠지, 물론 우리가 패소할 것이다. 하지만 고질적 전관 비리에 대해 누군가가 나서 '잘못됐다' 부르짖고 타파해야 하지 않는가. 차 전 대법관 본인으로서는 정말 억울하겠지만, 그분이 개업을 철회했으면 새로운 전통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 텐데."

―그동안 개업해온 다른 대법관 출신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지 않나?

"안대희 전 대법관은 10개월에 17억원, 이용훈 전 대법원장은 5년에 60억원을 벌었다. 대법관 출신치고 이렇게 못 버는 게 바보다. 그런데 이게 의뢰인을 위한 정정당당한 노력의 대가라기보다 전관(前官)에 의한 비리 행위다. 이제부터 개업 중인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을 특별 관리를 하려고 한다."

―특별 관리라니?

"법조윤리협의회 협조를 받아 사건 수임 건수, 행태, 수입을 파악할 계획이다. 대법관 출신은 연간 3만6천건에 이르는 상고심(上告審) 사건의 수임을 독점한다. 소송 내용도 모르고 상고 이유서에 이름 하나 써주고 '도장값'으로 한 건당 3천만~5천만원씩 번다. 요즘에는 월급 200만~300만원을 받으면서 일하는 젊은 변호사가 많다."

―실제 도장값 효과는 어떤가?

"대법원에는 '심리불속행(審理不續行)' 제도가 있다. 대법원까지 올라간 사건 중 65%가 재판 없이 기각된다. 그런데 대법관 출신 이름이 들어가면 다뤄준다는 것이다. 더욱이 1, 2심을 다 이겼는데도 상대가 대법관 출신을 쓰면 대법원에서 뒤집힌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말은 현직 대법관들에게는 모욕이 될 것 같은데.

"물론 대법원에서는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고 한다. 문제는 법률 시장에서 사건 수임 행태다. 대형 로펌의 한 부장판사 출신이 찾아와 7년간 사건 수임 장부를 보여줬다. 자신이 사건을 수임하고는 같은 로펌의 대법관 출신에게 도장을 받는 대가로 수임료의 절반과 성공 보수의 절반을 준다고 했다. 대법관 출신은 로펌 안에서 가만히 앉아서도 도장값으로 그렇게 챙긴다. 그런 돈이 법률 소비자, 즉 의뢰인에게서 다 나온 것이다."

―대법관 출신만 제한하면 법률 시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는가? 고등법원장이나 부장판사 출신에게로 돌아가지 않을까?

"현재로는 상고심에서 독점적인 영향력을 가진 이는 대법관 출신이다."

―현직 대법관들의 심기가 불편할 것 같다.

"대법관 14명 중 4명이 대학 동기다. 이들을 만나도 변호사 개업을 하지 말라고 설득한다. 사실 대법관 출신 중에서 돈벌이를 위해 개업하는 이는 소수다. 아예 변호사 등록조차 안 하는 분도 있다. 대부분 대학이나 공익 분야로 간다. 적지 않은 연금이 나오는데 명예와 품위를 지키는 게 옳다."

―대법관만 변호사 개업을 제한하고, 왜 검찰 고위직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나?

"순차적으로 할 계획이다. 검사장급 이상 출신은 변호사 선임계도 안 내고 현직 검사 후배에게 잘 봐달라는 전화를 거는 걸로 억대 수임료를 받는다. 이는 단순히 탈법만이 아니라, 수입 신고도 안 돼 탈세가 된다."

그는 경남 남해의 빈농 집안 출신이다. 서울 법대에 들어갔으나 사법시험에는 군대 제대를 한 뒤에야 붙었다. 대학 친구들은 판검사로 저 앞에 가 있었고, 늦은 나이에 변호사가 됐다. 그렇게 인생행로가 달라졌다. 한때 판검사로부터 설움과 무시를 받지 않았다면 지금의 그가 '돈키호테'처럼 단단한 벽을 향해 돌진하지 않았을 것이다.

―2년 임기가 끝나면 대한변협 회장에게는 '전관예우'가 없나(웃음)?

"법원이 봐줘야 전관예우가 있지(웃음). 변호사로 돌아가도 사건 수임을 할 생각은 별로 없다. 그런데 내가 사법개혁을 주장해서 그렇지, 정치 성향은 보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