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모바일·웹 날개 달고… 순정만화가 살아난다

조선일보
  • 곽아람 기자
    입력 2015.04.11 03:00 | 수정 2015.04.11 13:39

    80~90년대 거장들 컴백
    황미나·한승원·신일숙·… 네이버 등 온라인 연재
    카카오 판매 60%가 '순정'

    3040 여성이 主독자층
    어릴적 봤던 추억의 만화
    섬세하고 아름다운 그림, 高해상도 화면으로 만끽

    회사원 김이진(35)씨는 요즘 매주 화요일 출근길에 스마트폰으로 네이버 웹툰에 접속한다. 김씨가 갑자기 웹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지난 2월부터. 네이버 웹툰에 연재되기 시작한 만화가 한승원(57)의 '프린세스' 제5부를 보기 위해서다. 그는 "오래간만에 순정만화를 접하니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프린세스'는 한승원이 1995년부터 만화잡지 '이슈'에 연재했던 작품이다. 2008년 연재가 중단됐다가 지난해 6월부터 기존에 출간된 1~4부가 네이버 웹툰 을 통해 온라인 서비스됐다. 그리고 2월에 제5부를 인터넷에서 새로 선보였다. '프린세스'는 가상의 왕국을 배경으로 지고지순한 사랑을 지켜가는 공주와 왕자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전통 '순정만화'다.

    모바일과 웹을 통해 독자들에게 돌아온 1980 ~90년대 순정만화 거장들의 작품 속 등장인물.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신일숙의 ‘불꽃의 메디아’, 이은혜의 ‘이터널 웨딩’, 한승원의 ‘프린세스’.
    모바일과 웹을 통해 독자들에게 돌아온 1980 ~90년대 순정만화 거장들의 작품 속 등장인물.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신일숙의 ‘불꽃의 메디아’, 이은혜의 ‘이터널 웨딩’, 한승원의 ‘프린세스’. / 그래픽=김성규 기자

    웹·모바일 통해 돌아온 순정만화

    순정만화가 돌아왔다. 웹과 모바일을 통해서다. 우선 눈에 띄는 건 1980~90년대를 풍미했던 순정만화 거장들의 귀환이다. '순정만화계의 대모' 황미나(54)는 1991년 만화 잡지 '아이큐점프'에 연재했던 '파라다이스'를 지난달까지 네이버 웹툰에서 다시 선보였다. '아르미안의 네 딸들', '리니지' 등으로 잘 알려진 신일숙(54)은 현재 웹툰 사이트 레진코믹스에서 신작 '불꽃의 메디아'를 연재 중이다. 90년대 학원물 순정만화의 대표주자였던 이미라(53)와 이은혜(51)는 지난달 네이버가 한국만화가협회와 손잡고 기획한 목요웹툰 '한국 만화 거장전: 순정만화 특집'에 단편을 내놓았다. '하백의 신부'를 그린 윤미경(35), '100%의 그녀'를 그린 지완(40) 등 30~40대 만화가들이 인기인 다음 카카오의 모바일 콘텐츠 플랫폼 '카카오페이지'에서도 순정만화는 강세다. 다음 카카오 측은 "전체 만화 판매량의 약 60%가 순정만화"라고 밝혔다.

    '순정만화'가 우리 사회에 처음 등장한 건 1950년대 후반. 만화평론가 박석환씨는 "1950~60년대 신문에 삽화를 곁들인 소설 '만문만화(漫文漫畫)'가 연재되었는데, 그중 여성 취향인 로맨스물을 '순정만화'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1988년 11월 최초의 순정만화 잡지 '르네상스'의 창간으로 한국 순정만화는 전기(轉機)를 맞는다. '르네상스' 창간 멤버인 김영중 YJ컴퍼니 대표는 "이후 '하이센스''나나''윙크' 등 순정만화전문지가 잇달아 생겨나면서 대본소에서 빌려 보던 만화를 독자들이 서점에서 직접 구매해 집에서 보게 됐다"고 말했다.

    10여년간의 정체

    1997년은 만화 시장에 두 가지 악재(惡材)로 작용했다. 청소년보호법 시행으로 많은 만화가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지정됐다. 만화가 이현세가 '천국의 신화'음란물 시비로 기소된 것이 대표적 사례. 한국만화가협회 관계자는 "만화 잡지들이 연이어 폐간되면서 시장이 크게 위축됐다"고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IMF 금융 위기가 터지면서, 명퇴자들이 생계 수단으로 도서 대여점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영중 YJ 컴퍼니 대표는 "당시 전국에 5000여 개의 도서 대여점이 있었다. '구매'가 '대여'로 전환되면서 시장이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이후 인터넷 포털 사이트 시대가 도래하면서 '웹툰'이라는 장르가 새롭게 탄생했다. 웹툰 시장에 순정만화가 설 곳은 없었다. 만화평론가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는 "80~90년대의 순정만화는 그림의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했는데, 그것이 웹툰 환경과는 맞지 않았다"고 했다. 90년대 말~2000년대 초 컴퓨터는 종이보다 해상도가 떨어져서 정교한 그림을 보여주기에 적합하지 않았고, 인터넷 속도도 느려서 고해상도 그림을 전송하는 것도 무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순정만화는 답보 상태에 이르고, 그 자리를 일상의 이야기를 단순한 그림체로 표현한 '생활툰'이 차지하게 된다.

    3040 여성들이 지갑 연다

    90년대 말부터 시작된 10여년간의 공백기를 깨고 최근 순정만화가 '귀환'하게 된 배경은 뭘까. 업계에선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구축된 모바일 플랫폼이 큰 공헌을 했다고 분석한다. 모바일 콘텐츠 업계에서 일하는 황모씨는 "환경이 열악해도 어떻게든 만화를 구해 읽는 남성과는 달리 여성들은 대여점 같은 환경이 갖춰졌을 때 만화를 본다"면서 "모바일 플랫폼이 생기면서 여성들이 출퇴근길이나 취침 전에 휴대전화로 만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들이 어릴 때 봤던 80~90년대식 순정만화가 소비되고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의 지난해 6월 조사 결과에 따르면 네이버 웹툰 이용자의 45%가 20대, 26%가 10대다. 30대 이용자는 12%, 40대 이용자는 17%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네이버는 순정만화 소비에선 3040여성이 절대 우위를 차지할 것으로 추산한다. 돈을 내면 연재 중인 웹툰의 다음 회를 미리 보거나 종료된 웹툰을 볼 수 있는 네이버 N스토어 이용 결과가 그 근거다. 한승원의 '프린세스'는 지난해 6월 N스토어 만화 콘텐츠 유료 판매 부문 1위에 올랐고, 현재도 연재가 끝난 1~4부가 5위, 연재 중인 5부가 9위를 차지하는 등 상위권에 있다. 프린세스 5부 한 회 대여료는 150원, 구매료는 300원이다. 차정윤 네이버 홍보팀 과장은 "구매력 있는 3040 여성들이 주독자층이다 보니 연재를 기다리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지갑을 열어 미리 읽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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