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인권범죄엔 국제여론 압박이 효과적"

    입력 : 2015.04.08 03:00

    [송상현 前 국제형사재판소장]

    비회원국 김정은 법정 세우려면 UN안보리 제소가 유일한 방법
    총 12년 근무… 소장으로만 6년 "반기문 총장만큼 바빴던 날들"

    지난달 퇴임한 송상현(74)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장은 지난 12년을 '비행기에서 보낸 시간'이라고 했다. 재판소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지만 그는 "국제형사재판은 기록만 보고 할 수 있는 재판이 아니다"라고 했다. 자주 통화하는 반기문 UN 총장과의 주된 대화 주제가 '누가 더 바쁜지'일 정도다.

    2002년에 설립된 ICC는 유엔과는 독립된 기관으로 대량학살·반인도범죄·전쟁범죄·침략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다루는 재판소다. 그는 고시 행정과와 사법과에 합격하고 30여년 서울대 법대 교수를 지낸 뒤 2003년 아시아그룹 재판관으로 선출되면서 ICC와 인연을 맺었다. 2009년에 3년 임기 소장으로 선출됐고 2012년 연임, 6년간의 소장 생활을 지난달 마감했다. 총 18명인 재판관은 체결국 회의에서 투표로 선출하고, 소장은 재판관들이 호선해 과반수를 얻으면 결정된다.

    지난달 10일 퇴임한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장이 서울 적선동 사무실로 12년 만에 돌아왔다. 그 사이 자녀는 마흔이 넘었고 손주들도 부쩍 자랐다. 외동아들이지만 아프리카 오지에 있느라 어머니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고 한다. 부인과는 헤이그 근무 시절 5년만 함께 지냈다고 한다.
    지난달 10일 퇴임한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장이 서울 적선동 사무실로 12년 만에 돌아왔다. 그 사이 자녀는 마흔이 넘었고 손주들도 부쩍 자랐다. 외동아들이지만 아프리카 오지에 있느라 어머니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고 한다. 부인과는 헤이그 근무 시절 5년만 함께 지냈다고 한다. /오종찬 기자

    "일이 너무 많고, 무거운 자리입니다. 연임을 앞두고는 건강이 좋지 않아 아내도 반대할 정도였지요. 하지만 과제가 산적해 맡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북한 문제도 그의 머리를 무겁게 한 주요 이슈다. 그는 북한의 인권 침해에 대해 "오랜 시간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인종학살과는 다르지만 심각도는 그 못지않다"고 했다. 하지만 김정은을 법정에 세우는 것부터 쉽지 않다. 사건이 ICC로 오는 경로는 세 가지다. 가입국 스스로 '우리 사법 시스템으로는 안 되니 해결해 달라'고 의뢰하거나, UN 안전보장이사회가 제소하거나, ICC 검찰부가 직접 조사하는 것이다. 현재 아프리카 8개국 지도자가 재판받고 있는데 그중 5개국이 내전을 겪은 정부가 학살 책임자라며 제소한 경우다. 북한은 가입국이 아니어서 불가능하다. ICC의 직접 조사는 주권국에 대한 개입이라 조심스럽고 당사자가 협조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천안함 폭침 사건 예비조사도 북한의 비협조로 5년 시간만 끌다가 최근 종결됐다.

    따라서 유일한 방법은 안보리 제소다. 하지만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쉽지 않다. 그는 "북한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 압박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많은 탈북자와 납북자 가족이 ICC에 김정은 고발장을 내고 UN 본부에 청원도 했다. 그 결과 북한 인권 보고서가 작성되고 지난해 12월 안보리에서 정식 안건으로 채택됐다. 그는 '놀라운 진전'이라고 했다. "북한도 굉장히 당황하고 있습니다. 북한 외교관들이 전방위 외교전을 펼칠 정돕니다."

    ICC에 제소돼 사건이 종결되기까지 5년은 걸린다. 사실관계 확정에만 긴 시간이 소요된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내전에 소년병을 동원한 문제를 다룰 때도 '소년병' 여부의 확정이 쉽지 않았다. 법으로는 15세 이하인데, 주민등록증 같은 공식 기록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궁여지책으로 엄마를 불러 언제 낳았는지 물어보면 '달 밝은 밤이었는데 몇 년 전인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요. '주민등록증'도 가짜가 많아요. 집권당이 선거를 위해 마구 만든 신분증인 거죠."

    언어 장벽도 만만찮다. 소수 부족 언어는 통역을 구할 수 없다. "할 수 없이 재판을 중단하고 그 마을로 갑니다. 똑똑한 사람을 골라 하루에 여섯 시간 넘게, 몇 달씩 영어·불어를 가르칩니다. 그 후 재판을 재개하지요. 법률 용어도 가르쳐야 해요." 재판이 끝나면 형 집행 장소도 물색해야 한다. 그 나라 교도소에 인권 침해 우려가 있으면 이웃 국가에 협조를 요청한다. 이 모든 게 소장인 그가 조율해 온 일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쉼 없이 달려왔으니, 이제는 좀 여유있게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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