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만 좇아선 한국 춤 발전 없어"

조선일보
  • 유석재 기자
    입력 2015.04.01 03:00

    [한국 근현대 무용 복원해 무대 올리는 무용가 김문숙]

    韓근대춤 선구자 조택원의 아내… 평생을 한국 춤 현대화에 힘써
    국수호 디딤무용단 예술감독과 '춘향조곡' '모란등기'등 되살려

    무용가 김문숙은“늘 책을 읽는 것으로 건강을 유지한다”고 했다. 아래 사진은 1958년 김문숙의‘수평선’공연 모습.
    무용가 김문숙은“늘 책을 읽는 것으로 건강을 유지한다”고 했다. 아래 사진은 1958년 김문숙의‘수평선’공연 모습. /김연정 객원기자·김문숙씨 제공
    "풍채가 어찌나 비범하던지…. 평생 화장실 한 번 안 갈 분 같았어요." 1947년, 현대무용가 함귀봉의 조선교육무용연구소를 찾은 마흔 살 방문객은 그곳에서 춤을 배우던 열아홉 살 김문숙(金文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한국 춤 한 자락을 휙휙 추고 나더니 미려한 목소리로 '오 솔레미오'를 부르고 자리를 떴다. '한국 근대 춤의 선구자'로 불리는 조택원(趙澤元·1907~1976)이었다. 15년 뒤인 1962년, 조택원과 김문숙은 부부가 된다.

    "전통이라고 해서 늘 똑같은 것만 되풀이해서야 되겠어요? 역사성을 담아 끊임없이 발전을 시켜야죠." 서울 대치동 디딤무용단 사무실에서 만난 김문숙은 구순을 앞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손주뻘 젊은이들처럼 말이 빨랐고 활기가 넘쳤다. "1950년대에 전통을 모티브로 이렇게 창작을 했다고 보여주는 무대예요. 우리 근현대 춤 유산이 사장(死藏)되지 않도록 마련한 제 인생 마지막 무대가 될 겁니다."

    그 '무대'란 4월 2일 국립극장 무대에 오르는 김문숙의 미수(米壽) 기념 공연 '조택원·김문숙의 춤'이다. 조택원은 1920년대 일본 무용가 이시이 바쿠(石井漠)의 문하에서 서구 근대무용을 배운 뒤 한국 전통 춤과 접목해 예술로 승화시킨 인물이다. 그의 제자이자 아내이며 평생을 한국 춤의 현대화에 힘쓴 김문숙은 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다.

    "예전 프로그램과 신문 연재 기사, 사진 자료를 샅샅이 찾아봤습니다. 수시로 김 선생님께 여쭤 봤고요." 이번 공연의 재연 안무를 맡은 국수호(67) 디딤무용단 예술감독이 말했다. 국 감독은 한국 무용극의 기원으로 알려진 조택원의 '춘향조곡'(1941)과 김문숙의 무용극 '모란등기'(1958)를 무대에 되살려낸다. "'춘향조곡'은 조 선생님이 '한국 춤으로 '백조의 호수'처럼 스토리가 있는 공연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서 만들었던 겁니다. 대단한 역사적 의미가 있죠."

    서울에서 태어난 김문숙은 '여자가 깜장 치마 입고 춤추기만 해도 구경하던 시절' 배화여고와 중앙여대를 다니며 무용을 배웠다. 1948년 '미뉴엣'으로 데뷔했고, 6·25 전쟁 중 최승희의 반주자로 알려진 박성옥을 만나 춤과 장단을 익혔다. 1953년 '김문숙 무용예술학원'을 설립한 뒤 다양한 장르의 무용을 발표했다. '대궐' '수평선' '살풀이' 등 작품을 냈다.

    스물한 살 차이인 조택원에 대해서는 "천재적인 기억력을 지녔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영어·일어·프랑스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셨고, 예술은 만능이셨지만 수학은 못했고, 재테크는 멸시했죠." 약간 심드렁해진 표정으로 그가 말을 이었다. "'사랑 지상주의자'이기도 했죠. '춘향전'을 해외에서 공연할 때는 여자 무용수 없이 출국하곤 현지 발레리나를 가르쳐서 같이 무대에 올랐어요.">
    조문숙은 무용을 하는 후배들에게 "늘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예술가는 늘 머리가 꽉 차야 한다"는 것. "침실 머리맡에 책 10권을 늘 놔두고 읽고 또 읽어요. 그게 바로 제 건강관리입니다."


    ▷'조택원·김문숙의 춤' 2일 오후 4시·8시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02)2263-4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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