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30일 최근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의 주한미군 배치 및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결정 등과 관련해 한국 외교를 향해 쏟아진 각종 비판에 대해 직접 반박하고 나섰다. 윤 장관은 이날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재외공관장 회의 개막 연설에서 "고뇌가 없는 무책임한 비판에 신경 쓸 필요가 없으며 뚜벅뚜벅 갈 길을 가면 된다"며 "고난도(高難度) 외교 사안, 고차방정식을 1차원이나 2차원적으로 단순하게 바라보는 태도에 너무 연연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일각에서 19세기적 또는 냉전적 사고방식으로 우리나라를 여전히 고래 싸움의 새우 또는 샌드위치 신세같이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이런 패배주의적, 자기 비하적, 심지어 사대주의적 시각에서 우리 역량과 잠재력을 외면하는 것에 대해 의연하고 당당하게 우리 입장을 설명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날 회의에는 전 세계에 주재하는 대사 및 총영사 170여명이 참석했다. 외교 수장(首長)으로서 일선 공관장들을 격려하고 외교 과제를 알리는 자리가 공관장 회의다. 윤 장관은 이날 한국 외교에 대한 비판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일축하면서 연설의 대부분을 지난 2년여의 업적에 대한 자화자찬에 할애했다. 윤 장관은 "양자(兩者) 외교로부터 지역 외교, 글로벌 외교까지 대한민국의 전략적 위상과 존재감은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으며 한·미, 한·중 관계를 역대 최상의 수준으로 만들었다"며 "우리 다자(多者) 외교와 국제회의 외교도 전성기를 맞고 있다"고 했다. 한국 외교가 국민 모르게 언제 이런 엄청난 성과를 일궈냈는지 궁금할 뿐이다. 한·미 관계가 최상의 상태에서 순항 중이라는 윤 장관의 주장 역시 최근의 흐름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
윤 장관은 한국이 AIIB 창립 회원국 신청 마감 직전에 가입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서도 "최적(最適)의 절묘한 시점에 AIIB 가입 결정을 내림으로써 국익을 극대화했고 모든 이해관계자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외견상 드러난 모습을 놓고 보면 한국은 미·중(美中)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주요 국가의 참여 결정이 이뤄지자 부랴부랴 막차를 탄 쪽에 가깝다. 이 때문에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국이 AIIB에서 발언권을 확보하기 위한 사전 준비가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윤 장관은 "AIIB 결정은 고난도 외교력이 발휘된 대표적 사례"라고 자평(自評)했다.
윤 장관은 이날 "국익(國益)의 관점에서 우리가 옳다고 최종 판단되면 분명히 중심을 잡고 균형 감각을 갖고 휘둘리지 말고 밀고 나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조건은 "딜레마가 아니라 축복(祝福)"이라고도 했다. 사실 국민이 한국 외교에 바라는 것이 바로 이런 자세다. 그러나 우리 외교는 사드 등 어려운 결정과 맞닥뜨리면 '전략적 모호성' 같은 단어를 대놓고 입에 올리면서 주변 강국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 왔다. 윤 장관의 이날 연설에 공감할 국민이 얼마나 되며, 지금이 이럴 때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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