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26~29일 '아시아판 다보스 포럼'으로 불리는 하이난(海南)성 보아오(博鰲) 포럼에서 육·해상 신(新)실크로드 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줄기차게 강조했다. 지난 2013년 '일대일로'를 처음 제시했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28일 기조연설에서 "일대일로는 공허한 구호가 아니다"라며 "가시적인 계획이 될 것이며 동참하는 국가에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 주도의 일대일로를 통해 "아시아는 운명 공동체를 향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시 주석이 '아시아 운명 공동체'를 강조하며 중국의 구체적인 역할(일대일로)을 제시한 것은 아시아 패권, 즉 아시아 일극(一極)을 위한 행동에 돌입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는 과거 중국이 자신을 천하의 중심(中心)에 놓고 주변국을 다뤘던 '중화(中華)주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2012년 한 인터뷰에서 "중국(中國)은 '중앙 왕국'이란 의미가 있다"며 "중국인의 마음 깊은 곳에는 반(半)식민지로 전락했던 19세기 이전의 세계가 있다"고 말했다. 수천년 동안 동아시아를 주도하며 주변국의 조공(朝貢)을 받았던 기억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시 주석의 '일대일로' 구상도 그 뿌리는 과거의 영광에 있다. 중국은 2100년 전 육상 실크로드를 열고 비단·향신료 등의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았다. 지금 중국은 낙타가 다녔던 길에 철도와 도로를 깔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신(新)해상 실크로드는 600년 전 명나라 정화(鄭和)의 남해 원정대가 개척했던 남중국해~인도양~아프리카의 바닷길을 다시 장악하는 게 목표다. 일대일로와 중화주의 모두 주변국을 끌어들이려는 대외 팽창적 특성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중화주의가 총칼을 동원했다면 일대일로는 금융(金融)이 중요한 무기다. 중국이 설립을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400억달러 규모의 신(新)실크로드 펀드 등이 일대일로의 실탄이 될 전망이다. AIIB의 참가 신청 마감일(31일)을 앞두고 호주·러시아·브라질·대만 등이 추가로 참여 의사를 밝혔다. 중국신문망은 이날 "AIIB 창립 회원국이 42개국쯤 될 것"이라고 했다.
일대일로에 군사적 성격이 약한 것은 현재 군사·경제 패권국인 미국 때문이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중국 지도부는 미국과 군비 경쟁을 벌이면 반드시 진다는 사실을 안다"고 말했다. 경제적으로 미국을 앞서는 게 우선이란 뜻이다. 중국이 동·남중국해에서 군사력을 빠르게 확충하고 있지만, 미국과는 아직 전력 차가 크다는 평가다.
일대일로도 결국 태평양 쪽에서 밀고 오는 미국의 힘을 피해 서쪽(육상 실크로드)과 남쪽(해상 실크로드)으로 달려가려는 것이란 분석이 많다. 일대일로를 성공적으로 추진하려면 '중화주의 부활'에 대한 주변국의 우려를 잠재우는 것도 중요하다. 시 주석이 보아오에서 "일대일로는 독주곡이 아니라 합창곡"이라고 말하고 "문명 사이에 우열은 없다(夫物之不齊, 物之情也)"는 의미의 맹자 구절을 인용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그러나 주변국은 '중화주의 부활'에 대한 의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은 인도양의 해상 실크로드 거점인 스리랑카 콜롬보항에 15억달러를 투자하기로 스리랑카 측과 합의했다. 그러나 올해 초 스리랑카에 친(親)인도 성향 정권이 들어서면서 중국의 공사를 일시 중단시켜 버렸다. 중국 팽창을 견제하려는 인도 목소리가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一帶一路
일대일로에서 '일대(一帶)'는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육상 실크로드'를, '일로(一路)'는 동남아시아와 유럽·아프리카로 이어지는 '해상 실크로드'를 의미한다. 시진핑 주석이 2013년 9~10월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각각 순방하면서 처음 제시한 '신(新)실크로드 구상'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