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60代인 제가 40代로 보인다고요? 다 國樂으로 몸과 마음을 마사지한 덕분이죠"

조선일보
  • 최홍렬 기자
    입력 2015.03.28 03:00 | 수정 2015.03.30 09:20

    명상음악가로 변신한 '삿갓가수'김태곤

    7080세대 추억의 가수…송학사·망부석 등…퓨전 국악으로 인기…불교음악 범패도 공부
    국악이 명약…몸에 좋은 음식 고르듯…음악도 골라 들어야

    밝은 노래로 하루 시작하라…심신을 위로하는 음악…라디오서 명상음악 듣고 자살하려던 마음접었다는 사람도 있어

    서울 한복판에 '도인(道人)'이 나타났다. 지난 24일 오후 서울 잠원한강공원의 한 정자. 삿갓에 푸른빛이 도는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부는 대금 소리에 산책을 나온 시민들이 정자 주위로 하나 둘 몰려들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구슬픈 대금 소리가 강물 위에 퍼지고 노란 산수유꽃이 봄바람에 흔들렸다.

    이날 한강변에서 즉석 대금 연주를 한 사람은 '송학사' '망부석' 등을 부른 '삿갓가수' 김태곤(66). '산모퉁이 바로 돌아 송학사 있거늘/ 무얼 그리 갈래갈래 깊은 산 속 헤매나.'(송학사) 1977년 삿갓에 도포, 짚신 차림으로 무대에 서서 꽹과리 치며 노래를 부르는 그는 통기타와 청바지가 대세였던 대중음악계에 신선한 바람이었다. 국악 가락을 현대식으로 소화한 음악 세계를 선보여 7080세대에게는 추억의 이름으로 남아 있었다. 그가 퓨전국악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속 슬픔과 불안을 잠재우고 참된 나를 찾도록 도와주는 명상음악가로 변신했다.

    video_0
    지난 24일 서울 잠원한강공원 강변에서 삿갓에 도포 차림으로 대금을 불고 있는 가수 김태곤. 국악을 현대식으로 해석한 노래로 주목을 받았던 그는 퓨전 국악으로 마음속 불안과 슬픔, 트라우마를 제거하고 자신의 참모습을 찾도록 도와주는 명상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편안한 음악을 들으며 우리 마음속 막힌 곳을 열어 위안을 얻었으면 한다”고 했다./김지호 기자
    “60代인 제가 40代로 보인다고요? 다 國樂으로 몸과 마음을 마사지한 덕분이죠” 2015년 3월 24일 명상음악가 김태곤이 서울 잠원한강공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지호 기자
    삿갓 쓰고 대금 부는 사나이

    예전에 보던 삿갓만 그대로인 게 아니었다. 그는 60대 중반이 되었지만 40대 중반으로 보일 정도의 동안(童顔)이었다. 피부는 윤기가 나고 흰머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국악으로 몸과 마음을 마사지 받아서 그렇다. 국악을 하면서 복식호흡을 하게 되고 온몸 구석구석 맑은 공기를 전하고 노폐물이 제거돼 피부가 좋아진다."

    그는 "대금 소리에 자신을 맡기다 보면 어느새 명상 상태로 접어들어 우리를 괴롭히던 마음속 응어리나 트라우마가 없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며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마음이 저 한강물처럼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상태가 될 수 있도록 마음결을 회복할 수 있다"고 했다.

    경남 창원 출신의 그는 음악 가족 덕을 많이 보았다. 색소폰·클라리넷 등 서양 악기를 전공한 친척들과 기타·장구·피리를 다룰 줄 아는 아버지에게 악기 다루는 법을 배웠다.

    "중학교 2학년 때 두 달을 졸라 기타 선물을 받았다. 집안에서는 건설업을 하는 아버지의 일을 돕기를 바랐다. 육군본부 군악대에서 근무하며 음악을 본격적으로 접했다. 기타와 드럼을 담당하는 양악 파트였지만, 동료 국악인들과 가깝게 지내며 국악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왜냐고? '그냥, 저절로' 끌렸다. 사물놀이로 유명한 김덕수씨가 군악대 후배였다."

    그는 제대 후 음반 스튜디오에서 1년 반 동안 기타 세션맨으로 일했지만, 정작 자신의 음악 방향은 퓨전국악으로 잡았다.

    "외국 음악이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것은 좋지만, 정작 우리 음악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우리 음악은 하지 않느냐는 의문이 생겼다."

    명상음악가로서의 단초는 그윽한 목탁 소리로 시작되는 '송학사'에서 이미 내재되어 있었다.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고(故) 석주 큰 스님은 '송학사'를 듣고 '불교의 가르침을 쉽고 간결하게 표현한 노래'라고 했다. 노래 뒷부분에 나오는 '어서 달려가보세'는 반야심경의 끝 부분에 나오는 진언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가자 가자 빨리가자 저 피안의 세계로 가자)'를 쉽게 노래로 표현했다고 칭찬했다. 정작 나는 당시 불교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김태곤
    1980년대 초 무대에 선 가수 김태곤. 그는 ‘송학사’ ‘망부석’ 등 국악풍 노래로 대중음악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김태곤 제공
    석주 스님은 극구 사양하는 그에게 전법사(傳法師)가 되라고 권했고, 그는 1984년 조계종 전법사 품계를 받았다. 이후 산사(山寺) 음악회 전담 가수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불교 행사에 단골 초청 가수가 되었다.

    "1990년대 중반 불교의 의식(儀式)음악인 범패에 푹 빠졌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대표적 명상음악이었다. 신촌 봉원사에서 범패를 계승한 고(故) 송암 스님에게 배웠는데, 이 음악에만 전념하고 싶어 출가(出家)할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스님은 '한 3~4년 있다가 대답해 줄게'라고 했지만, 이후 입적하셔서 머리를 깎지는 않았다."

    1998년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에 들어가 범패 공부를 이어갔다. 그의 노래 '송학사'는 그가 음악 치료 세계에 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1990년대 중반 인제대 서울백병원에서 음악을 이용한 임상치료를 하던 정영조 박사(현 일산백병원 교수)가 '한국인의 심성과 체질에 국악이 더 맞지 않겠는가'라며 나를 강사로 불렀다. 삿갓 쓰고 짚신 신고 무대에 선 모습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그는 "당시 음악 치료는 하나같이 클래식을 비롯한 서양음악이었다. 하지만 서양음악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심성과 체질에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 땅에서 나는 음식이 우리 몸에 맞듯 서양음악 대신 국악을 음악치료에 활용하면 더 효과가 있지 않을까 모색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2년 동안 음악치료사 과정을 마쳤고, 2003년 경북 경산대(현 대구한의대)에서 '음악이 인체의 건강상태와 스트레스 정도에 미치는 영향'라는 논문으로 보건학 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긍정적 노랫말, 자기 암시 효과 있어

    김태곤은 "몸에 좋은 음식을 골라 먹듯 음악도 잘 골라 들으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국악은 3박자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우리의 자연환경과 문화에 맞춰 한국인의 신체와 호흡, 생체리듬에 맞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일제 때 4분의 2박자의 트로트가 들어온 이후 2박자와 4박자 풍의 서양음악이 대세가 됐다. 서양음악은 우리 민족의 몸에 밴 박자와 부조화를 일으킬 수 있다.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 음악은 자칫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정통 국악만 고집한 건 아니다. 2005년에는 10여년 만에 신곡 '대박났네'를 발표했다. "데뷔 초기부터 형·아우 하며 친하게 지내는 설운도가 노래를 만들어 주었다. 판소리 흥보가를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곡이다. 꽹과리도 치고 대금을 재즈 스타일로 연주하는 등 동서양 음악 주법을 아울렀다."

    전통 악기를 현대에 맞게 개량하기도 했다. 그는 해금을 누구나 쉽게 연주할 수 있도록 기타처럼 줄받침대를 붙여 개량한 '태금'('김태곤의 해금'을 줄인 말)을 선보여 실용신안특허를 받기도 했다.

    김태곤은 "편안한 음악에 위안을 얻으면 마음이 열리는 체험을 할 수 있다"며 "이런 경험은 우리의 삶을 바꾸기도 한다"고 했다.

    "학교나 각종 단체에서 명상힐링음악 강연이나 공연을 하면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엄마 앞에서처럼 펑펑 운다. 강연이나 공연에서는 내가 만든 명상음악을 배경으로 내레이션하듯 '참나'를 찾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촛불을 켜고 재스민·허브향을 피워놓기도 한다. 대금·해금·소금·장고 등 악기 연주는 물론, 새소리, 바람소리, 시냇물 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들려주기도 한다. 몇 년 전 심야 라디오 프로에서 내가 만든 명상음악을 틀었더니 한 중년 남자 청취자가 전화를 걸어와 '자살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이 음악을 듣고 생각을 바꿨다'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

    그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하는 음악은 동식물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3년 전 공연을 마치고 오는 길에 경북 안동 인근 도로변에서 많은 소가 울타리에 갇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물어보았더니 곧 도축될 소였다. 소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듯 하나같이 풀이 죽어 있었다. 불쌍해서 즉석에서 소금 연주를 했더니 소들이 소리 나는 쪽으로 몰려있었다. 소들은 눈을 크게 뜨고 콧구멍도 크게 벌리면서 나에게 다가왔다. 소의 뇌파에 알파파가 많아져 잠시나마 행복을 준 것 같았다."

    아침에 어떤 노래를 흥얼거리면 이상하게도 온종일 부르는 경우가 있다. 그는 긍정적 내용을 담은 노래를 권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다. 비탄 조의 슬프고 부정적인 가사의 노래를 하면 표정부터 어둡게 되고 근육도 긴장된다. 반면 긍정적인 노래는 사람의 태도와 정서를 유쾌하게 만드는 마법을 가지고 있다. 밝고 기분 좋은 노래의 기운을 받아 하루를 시작하라."

    "사회가 한창 발전하고 긍정적 분위기가 지배할 때는 가야금처럼 현을 퉁겨서 경쾌한 소리를 내는 탄현악기가 인기를 끈다. 반면 요즘같이 경기 불황으로 사회가 우울한 분위기에 휩싸이면 해금을 많이 듣는 경향이 있다. 해금은 전통적으로 거칠고 쓸쓸하고 듣기 싫은 소리로 분류된다. '거지 깡깡이'라는 말도 해금을 가리킨다. 이 음악을 많이 듣는 것은 마음이 황량한 사람이 위안 삼아 찾기 때문이다."

    그는 "힘든 시절일수록 사람들의 마음은 열불이 나고 꽉 막히고 트라우마와 분노에 시달리기 쉽다"며 "음악은 엔도르핀, 도파민 등 좋은 호르몬을 많이 방출하도록 해 우리 몸의 균형을 잡아준다"고 했다.

    "현대인은 액셀러레이터만 밟을 줄 아는데, 브레이크나 안전벨트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는 하나같이 속이 비어 있다. 우리도 번잡한 욕심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을 비워야 음악의 진정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