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도심 한복판에서 괴한이 심야에 우리 외교 공관에 불을 지르려다 실패하고 달아난 사건이 발생했다.
주일 한국 대사관은 26일, 신원을 알 수 없는 괴한이 전날 밤 11시 50분쯤 도쿄 신주쿠에 있는 주일 한국문화원 보조 출입구 외벽에 휴대용 지포라이터 기름 두 통을 놓고 불을 붙인 뒤 달아났다고 밝혔다.
불길은 3분 정도 맹렬하게 타오르다 수그러들었다. 이때 문화원에 입주한 한국관광공사 직원이 퇴근하기 위해 보조 출입구를 열고 나서다가, 발밑의 불씨를 보고 깜짝 놀라 119에 신고했다.
대사관은 범행 장면이 담긴 자체 CCTV 화면을 확보했다. CCTV 화면 중 범인이 보이는 장면은 10초 정도다. 30~40대로 보이는 남자가 검은 복면을 쓴 채 미리 준비해온 기름을 꺼내 불을 붙이는 장면이 담겨 있다. 대사관은 이 화면을 일본 경찰에 넘기고 "범인을 조속히 체포해 정확한 범행 동기와 과정을 밝히고, 대사관과 문화원 주변 경계를 강화해달라"고 요청했다.
일본 경찰은 그동안 한국 대사관 주변에 1개 중대 50명 정도의 경찰 인력을 24시간 배치해왔다. 그러나 문화원 주변은 일반인들이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는 이유로 대사관이 민간 업체에 의뢰해 자체적으로 경비해왔다.
대사관 관계자는 "복면으로 얼굴 전체를 가린 점, 지포라이터 기름을 미리 준비해온 점 등을 보면 우발적인 범행이 아니라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대사관 측은 "외국 공관을 대상으로 한 범행인 만큼 민간 건물을 공격한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면서 "엄정하게 대처해달라고 일본 경찰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도쿄 소재 한국 공관 앞에서 일본 우익들이 시위를 벌이거나 협박한 적은 있다. 하지만 이번처럼 직접 공격을 시도한 것은 1996년 이후 19년 만이다. 또, 외교관·관료가 아니라 민간인이 주로 이용하는 문화원을 공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대사관은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