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의 발발 원인을 북한의 남침(南侵)과 한국의 북침, 미국의 '남침 유도설' 가운데 하나에서 찾는 건, 언젠가부터 학계에서 '신앙고백' 비슷한 일이 되어 버렸다. 이완범(55·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1990년대 공산권 붕괴 이후 옛 소련의 비밀문서들이 공개되면서 김일성(북한)이 이승만(한국)을 치기 위해 무력 남침을 감행했다는 건 흔들릴 수 없는 사실이 됐다"고 정리했다. 소련·중국·북한의 '북방 3각(三角)'이 미국·한국의 '남방 2각'을 공격한 국제전(國際戰)이라는 것이 이 교수의 기본적 관점이다. 학계 일부에서는 '6·25 전쟁'이라는 용어에 대해 '북한의 침략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명칭'이라고 비판하지만, 이 교수는 "이미 통용되고 있는 이름을 인위적으로 바꾸려는 시도 역시 불필요하고 소모적"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의 시각은 언뜻 전통주의적 연구의 연장선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더 정확하게는 미국과 소련의 팽창주의적 대외 정책에서 공히 전쟁의 원인을 찾는 1990년대 이후의 '포스트 수정주의'와도 맥이 닿아 있다. 그는 "미·소가 사실상 합의하에 냉전 체제를 강요한 것이 분단이며, 이런 강력한 외인(外因)이 없었다면 이념 갈등이 아무리 심각했더라도 전쟁이라는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1945년 미·소(美蘇)의 한반도 분할 점령 ▷1948년 남북 정부 수립으로 인한 체제 분단 ▷1950년 동족(同族) 상잔 ▷1953년 민족 분단 상황 완성으로 남북 갈등이 증폭됐던 기간이 '해방 8년'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김일성이 전쟁의 원흉인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이승만을 전쟁의 피해자로만 바라보는 입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이승만에게 전쟁 발발의 책임은 없다고 해도 최소한 전쟁을 대비하지 못한 책임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1980년대 운동권의 필독서로 꼽혔던 '해방전후사의 인식'(이하 '인식')과 2006년 '인식'을 비판적 관점에서 재평가했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에 모두 참여한 정치학자다. 그는 "'불그스름하다'는 의미에서 '핑크빛'이라거나 심한 경우에는 '박쥐'라는 욕도 먹는다"면서도 "하지만 학자라면 사안마다 유연성을 지녀야 한다고 믿는다"고 했다. 이 교수는 "기존 연구들이 전쟁 발발과 기원에 치중했다면, 앞으로는 구체적 전개 양상에 대한 후속 작업을 통해 전쟁에 대한 총체적 그림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