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미래] 전세계 금융사들, CSR 잘하는 기업에 투자 나선다

입력 2015.03.24 03:00 | 수정 2015.03.27 14:14

해외에서 불붙은 지속가능금융 트렌드, 한국도 가능한가

2003년 전 세계 대형 금융사들이 모여 지속 가능 금융을 위한 ‘적도 원칙(Equator Principles)’을 만들었다. 대형 개발 사업에서 환경 파괴나 인권침해 등의 문제가 있을 경우, 대출하지 않겠다는 행동 협약이었다.

현재 적도 원칙에 가입한 80개 금융기관들의 대출 규모는 전 세계 70%를 차지하고, 1000만달러(100억원)가 넘는 모든 개발사업에 이 원칙이 적용된다. 국내에도 지속 가능 금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 13일에는 국회 CSR정책연구포럼이 주최하고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이 주관한 국제 세미나(‘금융은 기업과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가 열렸다. 지속 가능 금융에 무지한 한국과 시장을 주도하는 유럽 등 선진국 모습이 대비된 현장이었다. 편집자

리지아 노로나 유엔환경계획(UNEP) 이사

"금융부터 바뀌어야 사회 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날 국제세미나에 참석한 리지아 노로나<사진> 유엔환경계획(UNEP) 이사의 말이다. 리지아 이사는 런던 정경대에서 법, 경제,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평생 환경 및 에너지 분야의 국제기구, 국제 싱크탱크에서 연구해 온 환경 전문가다. 그는 UNEP FI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다. UNEP FI에는 현재 전 세계 은행, 보험회사, 투자자 등 230곳가량의 회원이 모여있다.

―지속 가능 금융이란 무엇인가.

"기업들은 정말 지속가능하게 행동하고 있을까? 물론 일일이 확인하긴 어렵다.하지만 최소한 환경이나 임직원, 사회문제 등에 있어서 대놓고 지속가능하지 않게 행동하기는 힘들다. '평판'이 깎일 리스크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리스크는 곧 장기적인 기업 수익에 영향을 미친다. 반면, 사회와 환경에 지속가능하게 운영하는 것은,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강화하고 새로운 시장 기회를 여는데 도움을 준다. 지속가능하게 운영하는 게 장기적인 비즈니스 수익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다. 지속 가능 금융이란 투자기관에서 투자 등과 관련해 의사 결정을 내릴 때, 환경, 인권, 지배구조, 이해관계자 고려 등 CSR 활동에 관련된 내용을 바탕으로 잘하는 곳에 투자해야 한다는 거다. 이렇게 되면 CSR을 잘하는 기업은 자금을 융통하기가 쉬워진다. 과거에는 '의무적으로' 여겨졌는데, 이제는 이런 투자가 이익률도 더 높다는 통계도 있다. "

―전 세계적으로 지속 가능 금융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것 같다.

"지난 6월 브라질에서 열린 'Rio+20(UN지속가능발전 정상회의)'이후로 녹색기금이나 에너지 효율기금 등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해결하기 위한 기금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미래에는 정책 입안자들과 금융권이 협력해 친환경 경제로 나아가는 동력을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유럽은 이미 지속 가능 금융이 당연한 패러다임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 뒤에는 이미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는 기업 CSR 공시 제도가 큰 몫을 한다. UNEP FI와 함께 일하면서 변화를 만들어낸 사례도 있다. 콜롬비아, 케냐, 나이지리아에서 UNEP FI는 정부와 협상을 통해 지속 가능한 금융에 관한 틀을 개발하기도 했다. 초기에는 금융시장 모니터링에 관한 프레임워크 등으로 시작해, 차츰 지속 가능 금융에 대한 안으로 발전했다. 지역 상관 없이 전 세계적으로 지속 가능 금융이 점차 중시되고 있다."

―지속 가능 금융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기업의 CSR 보고가 핵심이라고 했는데, 다른 나라에선 CSR 활동 보고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가.

"지난해, UNEP FI는 다른 유엔기구들과 협력해 '지속 가능 주식거래소 이니셔티브(Sustainable Stock Exchange Initiatives·SSEI)를 만들었다. 상장 기업들의 지속 가능성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는 것이다. 뉴욕 상장사나 나스닥(NASDAQ), 런던, 뭄바이 등에서도 참여했다. 한편,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기업의 환경, 사회, 지배구조(ESG)를 공개하도록 하는 데 선두 주자다. 요하네스버그 주식거래소는 상장기업들에 ESG 내용이 포함된 통합 보고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한다. 2013년 10월 1일 자부터, 남아공에 있는 모든 영국 회사는 연례 보고서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포함하도록 됐다."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상임이사

“불특정 다수의 돈을 관리·운용하는 금융기관들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 돈을 건전하고 책임 있게 쓰지 않거나, 수익성을 고려하지 못하면 사회에 중대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답은 사회책임투자(SRI)에 있다.”

양춘승<사진>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상임이사가 지속 가능한 기업과 사회를 위한 금융의 역할을 강조했다. 자산 1300조원을 운용하고 있는 우리나라 공적 연기금 64곳 중 유엔책임투자원칙(UN PRI)에 가입한 기금은 국민연금 단 한 곳뿐이다. 유엔책임투자원칙은 투자 과정에서 환경·사회·지배구조(이하 ESG) 등 비재무적 성과를 반영하자는 원칙이다. 전 세계 56개국 금융기관 1364곳이 이 원칙을 따른다.

양 이사는 “국민연금·사학연금·공무원연금 등 2013년 1225조원이었던 공적 연기금 규모가 2014년 말 1321조로 1년 새 96조원이 늘었지만, 국내 공적 연기금 직무자들의 사회책임투자에 대한 인식 자체가 놀랄 정도로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지적했다.

사회책임투자(SRI·Social Responsible Investment)란 투자자가 기업의 사회책임경영 여부를 고려해 투자 의사를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금융기관이야말로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 실제로 지난해 말, ‘사회책임투자법(국민연금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통과되면서 개정안이 시행되는 오는 7월부터 국민연금은 410조원에 이르는 주식·채권을 관리 운용할 때 ESG 요소를 고려할 수 있고 관련 사항을 공시해야 한다.

한국사회책임투자가 국내 공적 연기금 64개 중 자산 규모가 상위이면서 주식·채권을 운용하는 연기금 37개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인식 조사를 진행한 결과, ‘사회책임투자를 알고 있다’는 답변이 16%에 그쳤다. ‘모른다’는 응답이 절반에 달했고(49%), ‘알고 있지만 정확히는 모른다’는 22%, ‘무응답’은 13%로 나타났다. ‘실제 기금 운용 시 ESG 요소를 고려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다’는 답변이 37.8%에 불과했고, 앞으로 연기금의 사회책임투자 도입을 고려하겠다는 답변도 31%로 소극적인 모습이었다.

양 이사는 “기금 운용 내부 지침 때문(44%)을 비롯, 수익률 우려(31%), 조직 내 ESG 관련 인프라 부족(25%), 기업의 ESG 공시 정보 부족(19%) 등 다양한 애로 사항이 있었다”면서 “지속 가능 금융을 확산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사회책임경영 정보를 공시하도록 하는 제도, 기금 운용 시 책임 투자 방식을 도입하도록 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수익률 우려에 대한 인식 개선도 시급하다. 양 이사는 “유럽의 많은 학자가 사회책임투자와 투자 수익률을 연구한 결과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결과가 100%에 가까울 만큼, SRI는 안정성·수익성·책임성이란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투자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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