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982] 제주 本態박물관

조선일보
입력 2015.03.23 03:00

조용헌씨 사진
조용헌

'남(南)본태, 북(北)리움'. 수도 서울을 대표하는 미술관이 리움이라면, 남쪽 지방을 대표하는 박물관은 제주 서귀포에 있는 본태(本態)박물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성가(家) 홍라희 관장의 리움이 당대의 내로라하는 예술 작품들을 전시하는 미술관이라면 현대가 넷째 며느리 이행자 고문의 본태박물관은 한국인들의 소박한 생활용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리움에 귀품(貴品)이 많다면 본태는 민품(民品) 위주이다.

'본태(本態)'는 '우리 본래의 모습'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한국인의 본래 면목을 보여주는 고가구·병풍·소반·보자기·수예품·책장·문방구류 등이 소장되어 있다. 별로 값나가는 물건은 없다. 그렇지만 박물관 터는 값나가는 곳이다.

일본의 유명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지은 본태박물관 건물은 제주의 바다와 바람결, 맑은 하늘 가운데 한가하게 서 있는 느낌이 든다. 앞으로는 멀리 산방산(山房山)이 보인다. 투구 모양 같기도 하고, 힘센 장사의 주먹 모양 같기도 한 산방산의 기운이 박물관 터로 반사되어 돌아온다. 바닷가에서는 앞에 섬이 하나 있어야 좋다.

리움과 본태는 문화 권력을 상징하는 미술관이자 박물관이다. 한국 재벌가 안주인들이 자신의 상업자본을 문화 권력으로 전환하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돈을 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면이 다 있다. 서민들이 평소에 보기 어려운 예술품을 보면서 공부도 하고, 충전도 하고, 바람도 쐬며 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셈이다. 학계와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교류 장소이기도 하다. 교류에서 이종접합(異種接合)과 이종격투기가 이루어진다.

본태박물관에서 상여(喪輿) 전시를 한다기에 가보니까 '피안(彼岸)으로 가는 길의 동반자-꽃상여와 꼭두의 미학'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아니 어떻게 이처럼 근사한 제목을 뽑아냈습니까?" "몇 초 만에 생각이 났습니다." 상여 전시를 총괄 기획한 유홍준 선생의 대답이다. 어찌 몇 초 만에 났겠는가! 30~40년을 농축해서 발효시켜야만 선문답(禪問答)처럼 순간적으로 제목이 튀어나온다. 얼굴은 시커멓지만 눈빛이 아직도 형형한 유홍준은 국보급 인물이므로 잘 보존해야 한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