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A은행 명동금융센터 앞 공중전화 부스는 5분마다 사람이 들락거렸다. 전화를 걸려는 게 아니라 담배 피러 오는 사람들이었다. 담배를 피워 물고 부스에 들어간 20대 남성은 부스 안에 담뱃재를 떨구고 침을 뱉었다. 이 남성이 나가자 20대 여성 셋이 들어가 돌아가며 재를 떨고 침을 뱉었다. 한 전화기에는 누가 씹던 껌이 늘어져 붙어 있었다. 부스와 그 주변은 침과 껌, 오물들로 오염이 돼 다른 보도블록과 색깔이 달랐다. 명동 관광 안내를 하는 김모(24)씨는 "외국인들이 '공중전화가 어딨냐'고 물어봐도 너무 더러워 알려주기 민망할 정도"라고 했다.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공중전화는 관광지 및 지역 안내용 터치스크린을 갖춘 멀티 공중전화기였다. 낙서로 더럽혀진 부스 안에 들어서자 지린내가 코를 찔렀다. 수화기를 들고 신용카드를 넣자, '전화 설정이 안 돼 있습니다'는 문구가 떴다. 신용카드를 빼자 카드에 끈적한 뭔가가 묻어나왔다. 음료로 추정되는 이물질이었다. 관광 안내 기능을 쓰려고 부스 안에 들어선 중국인 2명은 손으로 코부터 쥐었다. '지역 검색''관광 정보'를 눌렀지만 터치스크린 화면은 정지 상태였다. 그들은 "영어 안내도 안 나오고 작동도 안 된다"며 짜증을 내며 자리를 떴다. 근처 한 공중전화 부스는 아래 유리가 모두 깨져 있었다. 광고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임모(65)씨는 "한 달 전 광고지를 붙이러 왔을 때도 이 상태였다"고 말했다.

낙서하고… 유리창 깨고… 자전거 묶어 놓고… - 19일 서울 신촌역 부근의 공중전화 부스들이 방치돼 있다. 공중전화기가 래커칠과 낙서로 지저분하거나(사진 위), 부스 유리가 깨져 사람 다리가 쑥 들어가기도 하며(가운데), 부스 골조만 남아 자전거 바퀴가 묶여 있기도 했다(사진 아래). 휴대전화의 다량 보급으로 이용률이 떨어진 공중전화 부스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도심의 흉물’이 되고 있다.

공중전화 부스가 '도심의 흉물'이 돼 가고 있다. 녹슨 바닥, 깨진 유리창, 각종 오물로 더럽혀진 공중전화 부스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먼지와 오물로 뒤덮인 수화기는 차마 입 근처에 갖다 대기가 꺼려질 정도다. 만인이 휴대폰을 쓰는 시대에,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천덕꾸러기 신세라고는 해도 공중전화의 관리 상태는 혐오감을 부를 정도로 엉망이다. 불가피하게 공중전화를 이용해야 하는 사람들은 "다시는 사용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중국인 교환학생 왕링(20)씨는 "한국의 공중전화는 냄새가 너무 심해 코를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왕씨는 "한국은 깨끗하고 세련된 곳이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내가 아는 한국이 맞는가 싶었다"고 했다. 일본에서 1년간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대학생 오모(25)씨는 "귀국한 지 얼마 안 돼 급한 일로 동네 공중전화를 쓰려다 놀랐다"고 했다. 오씨는 "들어갈 때부터 오줌 냄새가 났고 통화를 한 뒤 잔돈 나오는 곳에 손을 넣자 담배꽁초가 달려나와 기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공중전화 부스는 식사를 해도 될 정도로 깨끗한데 우리나라 공중전화는 온통 유리가 깨져 있고 전화번호부도 찢겨져 흉측했다"고 말했다.

국내 휴대전화 보급률이 올라가면서 공중전화 수는 급격히 감소했다. 전국의 공중전화는 KT가 운영하고, 공중전화 부스는 KT계열사인 KT링커스가 관리한다. KT링커스에 따르면, 1990년대 말까지 15만여대였던 공중전화는 현재 7만여대로 줄어들었다. 대당 사용 빈도도 급격히 떨어지면서 군부대 안 공중전화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 공중전화는 적자만 내고 있다. KT링커스 관계자는 "공중전화가 수익을 내지 못하기 때문에 관리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이를 폐쇄할 수 없다는 게 KT와 KT링커스의 고민이다. KT링커스는 공중전화 부스를 전기차 충전소나, 현금 인출기와 자동심장충격기(AED) 등을 갖춘 멀티 부스 등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기대한 만큼 활용도가 높지 않고 설치 비용은 비싸 고민인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