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응급환자가 생기거나 재난상황이 발생했을 때 인근의 민간자원을 신속하게 활용할 수 있는 '통합자원관리시스템'을 내년까지 구축하겠다는 안(案)을 밝히자, 비난 여론이 터져나오고 있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제대로 될 가능성이 없어 탁상공론에 불과하고, 관(官)에서 할 일을 민간에 떠넘기는 것이란 반응이 많다.

'통합자원관리시스템' 구상안은 의사·간호사, 재난분야 교수, 전직 소방관 등 전문가 인력풀을 만들어 전산망에 입력한 뒤, 긴급 상황 발생시 연락 한 번으로 지원하게 만든다는 내용이다. 예컨대 심정지 환자가 발생하면 통합시스템에 등록된 인근에 사는 의사에게 연락, 그 의사가 심정지 환자를 돕겠다는 자발적 의사가 있다면 돕도록 한다는 것이다.

주무부처인 서울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구조대보다 더 빨리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를 할 수 있다"고 통합시스템의 장점을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는 "지난달 있었던 사당종합체육관 붕괴사고에서도 주변 병원에서 6명의 의사가 현장에 와서 도와줬다"며 "지금의 자원관리시스템을 민간으로 확장하고 전산화해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초 발생한 서울 동작구 구립 사당종합체육관 옥상층 붕괴 사고 현장.

하지만 반응이 싸늘하다. 특히 통합시스템의 큰 축을 담당해야 할 의사들이 단단히 뿔이 났다. 전국의사총연합은 18일 성명을 내고 "응급환자 치료, 재난구호는 전적으로 정부와 지자체의 책임과 의무인데, 서울시의 이번 계획은 지자체가 해야 할 역할과 책임을 반강제적으로 민간인에게 떠넘기려는 몰염치한 발상"이라며 구상안 즉각 폐기를 요구했다.

서울시의사회는 "박원순 시장이 겉으로는 민간 중시·거버넌스 정치를 중요시 여기면서 실제 하는 것은 민간의 자원을 공무원 입맛에 맞게 휘두르겠다는 얘기"라며 "재난으로 고통 받는 이웃과 응급 환자를 돕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관이 나서서 대놓고 민간을 강제하고 관리하겠다는 식의 발상은 용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냈다. 한 의사는 "심폐소생술 하다 환자가 사망하면, 서울시가 책임져줄 거냐"고 했다.

시민들도 고개를 갸웃거린다. 취지는 훌륭하지만, 제대로 될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전문가 인력이 도움을 주는데 동의하지 않는다면 유명무실해질 게 뻔하고, 개인정보 유출 및 사생활 침해 문제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서울 서초동에 사는 회사원 박찬수(38)씨는 "의사나 전직 소방관은 매일 집에서 대기 상태로 있으라는 거냐"며 "신종 '열정페이(무보수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나 다름없다"고 했다. 서울 아현동에 사는 주부 황모(28)씨는 "서울시 말대로라면 아기 보다 일생기면 옆집 보육교사한테 아기를 맡기고, 배고프면 옆집 요리사가 밥해주고, 불나면 옆집 소방관이 꺼주는 건가"라며 "한심한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서울시는 앞으로 타당성 조사를 거친 뒤 전문가 자문을 반영해 내년부터 통합시스템을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소방재난본부 현장대응단 관계자는 "부정적인 반응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를 하고 있다"며 "앞으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현실에 적합하게 보완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