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127] 남과 다를 수 있는 권리

조선일보
  •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입력 2015.03.19 03:00

    김대식 KAIST 교수 사진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에니그마' 암호 판독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 그의 삶을 그린 영화가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왜 그런 걸까? 물론 튜링의 업적은 대단하다. 에니그마 암호 해독 외에도 현대 컴퓨터의 이론적 모델인 '튜링기계'를 제시했고, 기계 지능의 가능성을 논의했으며, 생물학적 패턴을 수학적으로 분석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만약 튜링이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고, 아이들 가지고, 사춘기 아이에게 무시당하고, 노후 대책을 걱정하다 늙고 치매에 걸려 죽었다면? 아마 튜링이라는 이름은 컴퓨터 교과서 말고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튜링을 기억하는 이유는 동성연애자였던 그가 자신이 '구원한' 조국으로부터 차별당하고, 결국 자살을 택했기 때문이다.

    자살. OECD 최고 자살률이라는 우리에겐 뼈아픈 현실이다. 왜 대한민국은 자살공화국이 돼버린 것일까? 생각해보자. 부모님, 선생님, 선배, 교수, 상관, 회장님, 멘토, 명사, 대가, 선진국, 가족, 아들딸, 손자손녀. 우리는 언제나 우리에게 어떻게 사는 게 착하고 바른 삶인지 가르쳐주고, 조언해주고, 명령하는 이들로 둘러싸여 있다. 항상 타인이 원하는 삶을 살기에 우리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선택할 기회가 없다. 거기다 대부분 한국인은 똑똑하고 착하다. 착하고 똑똑하지만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그야말로 최악의 조합이다. 차라리 멍청하다면 원하지 않았던 일을 제대로 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성격이 고약하다면 걷어차고 도망갔을 것이다. 왜 하는지도 모르는 일을 참고, 그것도 웬만큼은 할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이 어쩌면 우리의 진정한 비극인지도 모른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기에 남들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불안해진다. 남이 가진 것은 나도 가져야 하고, 내가 가질 수 없으면 남도 가져서는 안 된다. 모두가 비합리적이란 사실을 알지만, 아무도 바꿀 수 없다. 그리고 이런 현실에 사는 우리이기에 우리는 남과 다를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할 수 없었던 튜링의 삶에 열광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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