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봉길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장

한·중·일 세 나라가 한자리에서 조우한 것은 불행히도 전쟁을 통해서였다. 663년 나당 연합군과 백제·왜 연합군이 일전을 벌인 백강전투, 1592년의 임진왜란, 1894년의 청일전쟁은 모두 한반도를 무대로 벌어진 3국 간 전쟁이었다. 협력의 시대는 20세기가 끝날 무렵에야 시작되었다. 1999년 11월 ASEAN 10개국 정상회의에 초대된 세 나라 정상이 필리핀 마닐라에서 처음 자리를 함께했다. 조찬 모임은 연례 정상회의로 발전했다. 외교를 포함한 18개 분야에서 장관급 협의체가 운영되었으며, 그중 재무장관 회의는 아시아 금융 위기를 수습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3국 협력이 절정에 달한 것은 2011년 9월 상설 한·중·일 협력사무국을 서울에 출범시키면서였다. 정부 간 협정을 통해 국제기구로 출범한 사무국 직원 모집에 3국 인재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사무국이 출범하자 일본의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 중국의 탕자쉬안 전 국무위원 등 외교 거물들이 잇달아 방문했다. 2012년 10월 사무국 출범 1주년 기념 국제 포럼이 신라호텔에서 열렸을 때 나카가와 마사하루 일본 중의원 의원(전 문부과학대신)은 인상적인 연설을 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서울·도쿄·베이징 어디서 취직할까 고민하고, 중국 기업인들이 상하이·부산·아이치 어디에 투자할까 고민하고, 일본인들이 가루이자와·제주도·하이난다오 어디에 별장을 지을까 고민할 때 비로소 공동체가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모두가 3국 협력의 미래에 큰 희망을 가지고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너무 잰걸음으로 갔던 것일까? 장밋빛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아베 정권 등장 이후 일본의 우경화가 계속되면서 역사 문제와 관련해 한·중과 심각한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2012년 5월 베이징 3국 정상회의를 마지막으로 세 나라는 3년째 만나지 않고 있다. 2차 대전 종전 이후 동북아의 안정과 번영의 기초였던 3국 협력 체제에 큰 균열이 생겼다.

며칠 뒤 서울에서 한·중·일 외교장관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중국과 일본을 설득해 서울로 불러모은 것은 한국 외교의 주도적 노력이 거둔 결실이다. 현 시점에서 한국 외교가 모든 역량을 동원해야 할 과제는 한·중·일 3국 협력 체제의 복원이다. 한·중·일 FTA, 북핵 문제 등은 3국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한 사안들이다. 이번 외교장관 회의는 무엇보다 금년 중 3국 정상회의 개최에 관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정상회의 합의 전에 모든 갈등 요소의 해법을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먼저 정상들의 만남을 복원하여 협력 가능한 문제부터 합의함으로써 과거사 문제 등 갈등 해소의 모멘텀을 만들 수 있다.

과거사 해법은 최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일본 방문에서 제시한 적이 있다. 과거를 직시하고, 과거를 정리하는 것이 화해의 전제라고 했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3국 정상이 만나 2차 대전 종전(終戰) 70주년을 함께 기념하며 화해와 미래 지향의 공동성명을 발표할 수 있으면 최선의 시나리오일 것이다.

ASEAN은 회원국 간 분쟁·갈등에 관계없이 매년 가을 10개국 정상회의를 연다. 어려울 때일수록 진정성 있는 대화가 필요하다. 3년째 정상회의 의장국을 맡고 있는 한국의 주도적 역할과 기여가 동북아의 새 시대를 여는 데 긴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