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을 읽으면 성공한다?… '거짓 복음'일 뿐

조선일보
  • 어수웅 기자
    입력 2015.03.14 03:00

    지금 인문학은 자기계발 수단… 본령 벗어나 '스펙'으로만 소비
    '인문학 어른돌' 강신주 비판도

    '인문학 페티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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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 페티시즘|이원석 지음|필로소픽|228쪽|1만3500원

    도처에 '공주'다. '공부하는 주부들' 약자다. 10대도 인문학 책을 쓴다. 사장님도 인문학을 공부하고, 부하 직원도 앗 뜨거라 인문학 책을 집는다. 사방팔방 인문학 열풍인데, 정작 상아탑은 몰락이다. 관련 학과는 통폐합되거나 사라지고, 전공자는 천연기념물 수준. 지금 대한민국 인문학은 생산, 유통, 소비가 따로 놀고 있다.

    '인문학 페티시즘'은 대한민국 인문학이 본령을 벗어나 문화적 액세서리나 성공을 위한 '스펙'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도구 혹은 장식이 되어버린 인문학에 대한 열광. 그게 바로 페티시즘(fetishism·물신 숭배)이 아니고 뭔가. 책 제목이 만들어진 이유다.

    도발적 문제제기답게, 제1장은 인문 스타 실명 비판이다. 강신주. 저자 이원석〈사진〉은 그를 '인문학의 아이돌', 아니 '인문학의 어른돌'이라고 명명한 뒤 한발 더 나아간다. 대중 위에서 훈계하는 '꼰대질'과 대중 상대로 약을 파는 '무당질', 이 두 가지에 모호하게 걸쳐져 있다고 말이다. 물론 이원석의 강신주 비판 중에서 가장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인용이다.

    공정을 기하기 위해 강신주에 대한 호의적 해석도 병기(倂記)하자. 이원석은 그를 훌륭한 학자라고 인정한다. 연세대 철학과 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한 초기작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노자: 국가의 발견과 제국의 형이상학' 등이 그 예다. 학문과 문제의식을 평가하는 것이다.

    이원석.
    하지만 강신주의 주력 상품은 '독설화법'. 그는 서강대 철학과 김영건 교수를 인용하면서, 강신주의 가장 큰 문제는 상대방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게 아니라, 자기계발의 수단이나 장식으로 이용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인문학의 목적과 수단의 전도(顚倒)다. 독설이 영혼을 깨운다? 독설을 듣고서야 동기 부여가 된다면, 이건 노예와 마찬가지가 아닌가. 논란이 됐던 그의 '냉장고를 버려라' '서울역 노숙자' 칼럼도 마찬가지. 재래시장 살리고 생태문제 해결하려면 냉장고를 없애라던 강신주의 칼럼은 "여보, 아버님댁에 냉장고 빼드려야겠어요"라는 비아냥을 받았고, 서울역 노숙자를 수치심도 없는 존재로 묘사한 후자의 칼럼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본에 대한 분노와 저항' 등의 이런저런 해명이 있었지만, 결국 도발만 있었지 실제 자본주의에는 계란 투척만큼의 영향도 주지 못했다는 것. 발화자는 안전하고, 대신 개인에게 부담만 지우는 공허한 주장이었다는 것이다.

    이원석의 또 다른 주요 타깃은, 인문학 열풍을 생존과 성공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게 아닐까 의심받는 이들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자신 스스로를 '기적' '천재 작가'로 호칭하는 김병완과 김태광. 김병완은 10년 근속한 삼성전자를 그만두고 나와 도서관에서 3년 동안 1만권의 책을 읽었다고 소개해 방송에서도 화제가 됐고, 김태광은 37세 때 이미 150권의 책을, 그리고 2년 동안 45권의 책을 썼다고 주장했다. 일기장에만 쓰는 자기소개라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이런 주장을 독서 시장이나 글쓰기 시장에서 '마케팅 포인트'로 삼는다는 게 문제다. 3년에 1만권이면 하루로 빼놓지 않고 매일 10권가량 읽어야 가능한 숫자인데, 후루룩 넘길 수 있는 자기계발서도 아니고 플라톤의 '향연'이나 도스토옙스키의 '죄와벌'을 그런 식으로 읽는 게 가능할까. 또 "3년 동안 230명의 작가를 배출한 1등 책 쓰기 코치"로 자신을 소개하는 김태광의 글쓰기 코치 강의 비용은 무려 679만원(선착순 10명)이라고 했다.

    이 책을 쓴 이원석은 자기계발서 비판인 전작 '거대한 사기극'으로 2013년 한국출판평론상을 받은 인문학도.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대학원에서 문화이론 전공으로 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

    인문학을 읽으면 성공한다?… '거짓 복음'일 뿐
    /Getty lmages 멀티비츠
    마지막 8장에서 그는 대학에서 쫓겨나와, 혹은 대학을 뛰쳐나와 공부 모임을 하고 있는 '인문 공동체'의 폭발적 확산과 분화를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수유와 서사연, 연구공간 너머가 결합한 '수유너머', 그리고 이들이 분화된 남산강학원, 수유너머문, 수유너머N, 수유너머R, 인문팩토리 길, 철학아카데미, 소운서원, 대안연, 다지원, 세움, 인문학 협동조합, 가장자리 등이 그 고유명사들이다. 대학에서 배움의 욕망을 충족하지 못한 이들이, '대학 밖의 대학'을 찾아 나선 것이다.

    이원석의 궁극적 주장은 인문의 참된 능력 회복. 인문 교양을 통해 천재가 되고, 성공을 하게 된다는 '거짓 복음'이 아니라, 세상에서 자기만의 규칙으로 뚜벅뚜벅 걸어갈 힘을 얻는 것이다. 자칫 현실 사회에서 '루저'로 치부될 위험도 없지는 않겠지만, 왜곡된 인문학 열풍의 현실에서 스스로를 돌이켜볼 수 있는 독서 체험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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