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미래] [인터뷰] 영국표준협회 표준부문 수장 스콧 스티드만

입력 2015.03.10 03:00 | 수정 2015.03.24 14:55

"세계시장에 선도적 기업이 되려면 CSR (기업의 사회적 책임)국제 표준을 따르는 것 불가피"

사람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기업이 이해 관계자를 대하는 방식이 중요해졌다
ISO 26000은 이러한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국제 표준(standard)은 '좋은 물건·서비스란 어때야 하는가' '좋은 기업이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국제적 합의다. 과거에는 제품의 품질이나 안전 규정을 다루는 표준 위주였다. 이제는 다르다.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드는 것 이상으로 그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다하는지가 중요해졌다. ISO 26000(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제 표준)처럼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지속 가능성에 대한 국제 표준은 앞으로도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세계시장에서 선도적인 기업이 되고 싶다면 이런 표준을 따르는 건 불가피하다."

영국표준협회(British Standards Institution·이하 BSI)의 표준 부문 수장인 스콧 스티드만(Scott Steedman ·사진)의 말이다. 1901년에 창설돼 올해로 11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BSI는 ISO(국제표준화기구·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의 설립을 주도한 표준 부문에서 가장 권위 있는 기관이다. 95% 이상의 영국 국내 표준(BS)이 국제 표준(ISO)의 근간이 됐다. 품질관리 체계 국제 표준인 ISO 9001이나 환경 국제 표준 ISO 14001도 그 한 예다.

스콧 스티드만은 영국 왕립공학대학 부총장을 역임, 스마트 TV 등의 공학 분야 표준을 설정해온 가장 권위있는 전문가다. 지난달 28일 한국을 방문한 스콧 스티드만을 만나 '기업 지속 가능성과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있어서 표준의 역할'에 대해 물었다.

―'표준'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이 뭔가.

"BSI는 세계 최초로 설립된 표준 기관이다. 당시 영국에선 산업혁명으로 토목과 건설 수요가 컸다. 그러나 각기 다른 생산자가 생산하는 철강 규격이 달라 상호 호환이 불가능했다. 1901년 영국토목학회 제안으로 기계학회, 철강학회, 전기학회 등이 모여 '철강 표준화'에 대한 첫 표준 규격을 만들었다. 각도, 너비, 높이 등 동일한 '표준 규격'이 마련되자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여러 생산자가 공동 생산하거나 다른 생산자로부터 특정 부품을 공급받는 게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제품의 안전과 품질을 중심으로 수천 개의 표준이 제정됐다. 이후 BSI 주도로 1946년 국제표준화기구를 설립했다. 영국을 넘어 전 세계에 표준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이제는 모든 국가가 하나의 국가표준기관을 두고 있다. BSI는 그런 기관들과 협력해 표준을 설정해나간다. 한국에선 국가기술표준원과 한국표준협회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스콧 스티드만
/ BSI 제공
―'표준'이 기업 지속가능성이나 CSR과는 어떻게 관련이 있나.

"'표준'의 핵심은 관련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어떤 게 좋은 것인가(what good looks like)'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다. 좋은 기업에 바라는 게 달라지면서 표준도 변해 왔다. 초기엔 품질과 제품을 중심으로만 수천 개의 표준 규정들이 만들어졌다. 1960~70년대 들어 '생산 과정'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가 생겨났다. 어떤 안전 설비를 구비해야 하는지, 어떤 유해물질을 쓰고, 쓰지 말아야 하는지 등에 대한 표준들이 제정됐다. 지난 10년간 또다른 흐름이 보인다. 사람들은 이제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지, 소비자·직원·환경·지역사회 공동체 등 다른 이해 관계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중요해졌다. ISO 26000은 이러한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ISO 26000이 나왔을 때 많은 한국 기업이 관심을 보였지만 이제는 시들해진 감이 있다. 한국에선 최근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보다 공유 가치 창출(CSV)을 더 중시하는 곳도 많다. 강제성 없는 표준에 힘이 있을까.

"ISO 26000의 경우 정부·노동조합·소비자·기업·환경단체 관련자 등 기업과 관련한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수년에 걸쳐 국제적 합의를 이뤄 놓은 틀이다. 이를 기업 운영에 반영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기업의 선택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선 어떤 모양새를 갖춰야 하는지 알려주는 가이드이다. CSV는 국제적으로 합의된 표준이라기보다는 어떤 결과물을 측정하는 '마케팅 툴'에 가깝다고 본다.(그는 CSV 용어가 생소하다며 용어 설명을 부탁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국제 표준은 앞으로 계속 중요해질 거다. 현재 글로벌 생산망(supply chain) 내 CSR, 윤리 등의 리스크 관리를 위한 표준도 새롭게 제정됐다(PAS 7000). '기업 거버넌스'와 관련한 다양한 표준도 논의 중이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선 기업 내 '거버넌스 구조'가 핵심 요소라고 보기 때문이다. 영국에선 이미 기업 내 의사 결정 구조, 리스크 관리 등을 다룬 '기관 거버넌스에 관한 표준'(BS 13500)이 발행됐다. BSI에서 작성한 '반부패에 관한 표준'(BS 10500)도 현재 국제 표준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사회'에 관한 표준도 현재 영국 내에서 논의 중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기업의 자율성이 약해지고 이는 결국 자발적인 성장을 방해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잘못된 생각이다. 혁신을 제한하는 건 규제다. 표준은 혁신을 촉진하는 도구다. 영국의 경우 기업이 환경에 관한 국제 표준 ISO 14001을 따른다고 하면 기업을 크게 규제하진 않는다. 국가가 정한 최소한의 법을 상회하는 국제 표준을 따른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노 기술 분야는 표준이 혁신을 촉진한 좋은 예다. 나노 기술 산업 관계자들이 모여 계속해서 표준을 만들었다. 분야 이해 관계자 간 합의를 하고 표준을 통해 산업을 발전시키다 보니 나노 기술을 대상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규제가 없다. 나노 기술 산업이 단기간에 크게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규제나 법은 한계가 있다. 어기면 안 될 최소한의 요소만 다룬다.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 표준은 다르다. '좋은 기업이라면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합의다. 기업 내부의 혁신에도, 기업 활동과 관계된 여타 이해 관계자들에게도 표준은 훨씬 좋은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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