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27년전 '우리마당 피습사건' 때 만났던 김기종

조선일보
  • 김창균 사회부장
    입력 2015.03.07 03:00

    정보사 테러 의심 보도에 "그럴 이유 없다"던 김기종
    파문 속 사회적 관심 받자 "극우세력의 테러 가능성"… 한 달여만에 180도 달라져

    김창균 사회부장 사진
    김창균 사회부장

    1988년 8월 17일 새벽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신촌역 부근 재야 문화 운동단체 '우리마당' 사무실에 괴한 4명이 침입해 이 단체 회원인 대학생들을 폭행하고 달아났다. 입사 넉 달 된 수습기자로서 서대문경찰서 구역을 담당하고 있던 필자는 우리마당 사무실에서 대표 김기종(당시 나이 28세)을 만났다. 얼굴도 이름도 기억에 없지만 '순수하고 순진한 사람'이라는 인상이 남아 있다.

    그날 석간신문들은 이 사건에 '거대한 배후'가 있을 것이라고 예단하는 보도를 했다. "머리를 짧게 깎은 네 명의 괴한이 한 사람의 지시에 따라 절도 있게 움직였다"는 피해자의 말이 그런 냄새를 짙게 했다. 중앙경제신문의 오홍근 사회부장이 '군사 문화를 청산해야 한다'는 취지의 칼럼을 게재했다가 육군 정보사 소속 현역 군인들에게 테러를 당한 지 열흘 남짓 지난 시점이었던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다음 날 다시 만난 김기종은 이런 보도를 불만스러워했다. 우리마당은 그저 전통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며 테러 대상이 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건 성격이 규정되면 피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피해자 여대생을 어렵게 만나 봤다. "범인들이 군인 같더냐"고 물었더니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기자들이 "범인들의 머리가 짧지 않았느냐" "네 명 중 우두머리가 있더냐"고 물어서 "그런 것 같다"고 대답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마당 피습 사건은 그렇게 '군 정보기관의 계획적인 테러'로 프레임이 잡혔다.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야 3당은 경쟁하듯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이를 비판하는 보도들이 쏟아졌다. 사건 40일이 지난 1988년 9월 27일자 신문 보도 속에서 김기종의 인터뷰 내용을 읽었다. 김기종은 "우리마당이 재야 문화단체로는 최초로 통일마당 큰잔치 행사를 개최할 계획을 세운 직후에 이 사건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극우 세력의 테러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사건 직후 김기종이 했던 말과 180도 달랐다. 거물급 재야인사로 떠오른 자신의 위치를 즐기고 있는 듯했다.

    리퍼트 주한 미 대사를 칼로 찌른 사람이 우리마당 대표라는 소식을 듣고 놀랐고,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김기종의 그간 행적을 확인하고 또 한 번 놀랐다. 2007년 청와대 앞에서 "1988년 우리마당 피습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라"고 분신까지 했다는 대목이 특히 충격적이었다. 언론과 야당이 만들어 낸 우리마당 피습 사건 프레임이 그를 이런 비극으로 몰아온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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