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達觀(달관) 세대' 속에 스티브 잡스가 있다

    입력 : 2015.03.07 03:00

    한현우 문화부 차장 사진
    한현우 문화부 차장

    대기업·정규직·고소득 같은 기성세대의 가치를 버리고 행복하게 사는 법을 스스로 터득한 '달관(達觀) 세대'가 등장했다는 기사를 읽으며 반가웠다. 기성 가치를 맹종(盲從)하다가 한 달에 88만원밖에 벌지 못하는 자신에게 좌절하고 낙담해서 폐인이 되는 것보다야 '적게 벌고 적게 쓰겠다'고 마음먹는 게 훨씬 낫다. 물론 그보다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잘하는 일을 하다 보면 더 잘할 수 있게 되고, 돈 벌고 존경도 받는 사례를 무수히 봤다. 가장 좋은 예는 애플을 창업한 스티브 잡스다.

    결성 19년째인 록 밴드 '크라잉넛'이 몇 년 전 책을 냈다. 1976년생 초등학교 동창 넷이 열아홉 살 때 어울려 만든 밴드이고 '대중음악계의 악동(惡童)' 이미지인 이들의 책 제목은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읽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어른들은 언젠가부터 우리에게 말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래? 이제 음악은 그만하고 먹고살 길을 찾아야지. 남들처럼 성공해야 하지 않겠어?' 다들 '성공'을 말하기에 그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봤다. 그 뜻은 '목적하는 바를 이룸'이었다. 우리의 목적은 '록밴드를 하면서 함께 늙어가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린 이미 성공한 것이었다. 그 후로는 어른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저희 성공했는데요.'"

    사회생활 하면서 알게 된 친구 중에 만화가 김양수가 있다. 그는 이른바 명문대 출신이 아니고 대기업에 취직한 적도 없다. 어찌 보면 그 반대였다. 글쓰기를 좋아했기에 작은 잡지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미대는 가지 못했지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잡지에 만화도 연재했다. 잡지 시장이 무너지면서 직장도 위기에 처했다. 그는 만화가로 전업했다. 인기 웹툰 '생활의 참견'을 매주 2회씩 연재하는 그의 만화는 "그림보다 대사가 좋다"는 평을 받는다.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 잘할 수 있는 두 가지를 열심히 한 결과다. 또래 대기업 직장인보다 더 나은 수입을 올리며 수많은 독자의 응원을 받는다. 그가 대기업 임원이나 의사, 고위 공무원인 고교 동창들보다 불행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달관 세대'의 등장은 '남들보다 앞서가는 법'만을 가르쳐 온 한국 교육의 상처가 곪아 터지기 시작한 것으로 봐야 한다. 남들보다 앞서가는 것도 의미 있는 삶이다. 그것만이 옳은 것처럼 가르치는 게 잘못이다. 초·중·고는 물론이고 대학에서까지 젊은이들을 직진 주로(走路)로 몰아세운다. 모든 사람에게 1등을 하라고 가르치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1등이 되지 못해 좌절해야 하는가.

    '달관 세대'를 두고 기성세대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다. 성공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국가 성장 동력이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쓸데없는 걱정 같다. 달관 세대는 삶을 포기한 세대가 아니라 기성의 가치, 정확히는 '못살던 시대의 가치'에 더 이상 매달리지 않는 세대다.

    스티브 잡스는 젊은이들에게 "애인을 찾는 것처럼 직업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달관 세대는 부모가 권하는 직업 대신 애인 같은 직업을 찾는 세대다. 그들 가운데서 한국의 스티브 잡스가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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