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을 통해 보는 역사] ② 조선통신사 김성일 VS. 황윤길

  • 디지틀조선일보 정신영

    입력 : 2015.03.06 16:37 | 수정 : 2015.03.06 16:42

    지난주 KBS 사극 '징비록'에서는 왜에 파견되었던 조선통신사가 조선으로 돌아와 선조에게 보고하는 장면이 마지막에 그려졌다. 정사와 부사로 통신사를 이끌고 다녀온 황윤길과 김성일은 판이하게 다른 결과를 보고하며 조정 내 당파끼리 또 한번의 의견충돌이 있을 것임을 예고했다.

    ◇ 조선통신사의 파견

    태종4년(1404년), 조선은 처음 일본과 외교관계가 성립되었다. 조선은 국왕이 보내는 사절단인 통신사를 왜로 보냈고, 왜에서는 막부장군이 보내는 일본국왕사를 조선으로 보냈다. 당시 왜는 무사가 정권을 장악하는 막부시대였기에 일본 국왕이 아닌 실질적인 지배자 막부장군에게 통신사가 파견되었다. 통신(通信)은 서로 신의(信義)를 통하여 교류한다는 의미이다.

    조선통신사 행렬도. 출처: 위키피디아

    ◇ 선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본 정세 파악을 위해 통신사 파견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의 무사들을 정리하고 중앙집권화를 이루자, 선조는 1590년 3월 일본의 정세를 파악하기 위해 사절단을 보낼 것을 결정했다. 서인이었던 황윤길을 정사로, 동인이었던 김성일을 부사로 임명하였는데 이 때부터 두 사람의 의견 대립은 예고되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 사절단을 맞이하는 예를 지키지 않은 일본

    일본은 대마도에서부터 그 동안 두 나라가 사절단을 맞이할 때마다 의례적으로 행하던 절차대로 진행하지 않아 조선의 사절단을 격노하게 했다. 특히 부사 김성일은 그들의 태도가 거만하다며 통신사 일행이 움직이는 것을 반대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있는 오사카에 도착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선조의 국서를 수령하는 것을 지체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사신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도 예를 지키지 않고 오만 방자하게 행동했고, 사절단이 돌아가기 위해 답서를 달라고 재촉해도 차일 피일 미루었다. 답서의 내용도 거만하다 하여 김성일이 몇 번씩 수정을 요청해서야 수령하여 조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초상화(좌), '징비록'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우). 출처: 위키피디아, KBS 화면 캡처

    ◇ 상반된 보고를 하는 황윤길과 김성일

    황윤길 '일본 침략 준비' VS. 김성일 '허세'

    우여곡절 끝에 약 1년만에 조선으로 돌아온 통신사의 황윤길과 김성일은 상반된 의견을 내어 놓는다. 황윤길은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은 눈빛에 광채가 깃들어 탐욕과 지략을 갖추었고, 전국을 통일한 직후라 자신감과 야심으로 가득 차 금방이라도 조선으로 쳐들어올 것으로 보였다."며 침략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할 것으로 보고했다. 반면, 김성일은 "풍신수길의 행동은 과장되고 허세에 가득 차 있었다."며 "군사를 움직일 저의가 있었다면 은밀하게 움직였을 것"라고 반박했다. 또, "조선과 지위를 대등하게 하기 위한 허세일 뿐이다"고 일축했다.

    선조에게 상반된 보고를 하는 황윤길(좌)과 김성일(우). 출처: KBS 화면캡처

    이것이 동인과 서인의 경쟁관계에 의해 나온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렇게 판이하게 다르게 본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으나, 두 붕당의 대립 관계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후 조선의 조정은 조선 최대의 위기인 임진왜란을 준비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더욱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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