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南北 교류, 스포츠에 거는 기대

입력 2015.03.06 03:00

조정훈 스포츠부장
조정훈 스포츠부장
통일 독일의 첫 총리를 지낸 헬무트 콜은 2009년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을 맞아 "독일 역사에 자랑할 게 많지 않지만 20년 전 통일만은 자랑스러워할 만하다"고 회상했다. 서로 다른 체제(體制)로 살다가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을 이뤘다는 자부심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스포츠 교류도 중요한 축(軸)을 담당했다. 서독과 동독은 1950년대 초부터 종목별로 단일팀을 구성해 국제 대회에 나갔다. 1957년부터 베를린 장벽이 설치된 1961년까지 모두 3970여 차례 스포츠 교류를 이어갔다. 1956~1964년에는 6차례에 걸쳐 동·하계 올림픽에 단일팀으로 출전했다. 정치적 문제 등으로 동·서독 교류가 단절된 시기도 있었지만 1970~1980년대 동·서독 간 스포츠 교류에 관한 의정서 체결이나 스포츠 분야 협력을 명문화한 문화 협정 체결 등을 거치며 교류가 대폭 확대됐고, 마침내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한반도 상황도 독일과 비슷한 면이 많다. 분단 이후 남북의 첫 스포츠 교류는 1963년 1월 남북 체육 실무자 회담이었다. 1962년 6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59차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가 '1964년 도쿄올림픽에 남북한 단일팀으로 참가하라'고 권고한 데 따른 것이었다. 회담은 결국 결렬됐지만 스포츠라는 공통 관심사를 놓고 마주 앉은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었다. 이후 한참 세월이 흐른 뒤 1991년 일본 지바(千葉) 세계탁구선수권 단일팀 출전, 1999년 평양과 서울을 오간 남북통일 농구 대회, 2000년 시드니올림픽 남북 공동 입장 등 남과 북이 함께한 스포츠 이벤트들은 우리 국민에게 통일에 대한 희망을 선사했다. 2013년 9월 평양에서 열린 아시아클럽 역도선수권에서는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상상하기도 힘들었던 사건까지 벌어졌다.

올해는 광복 70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이를 계기로 지방자치단체나 민간단체들이 경쟁적으로 남북 스포츠 교류에 나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자체 예산이 바닥난 한 지자체는 중앙정부의 남북교류기금을 이용해 교류에 나설 계획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이제부터라도 문화체육관광부·대한체육회·통일부 등 각계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구성해 '퍼주기식' '사기(詐欺)성' 스포츠 교류는 걸러낼 필요가 있다. 독일처럼 남북이 공동으로 기준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3년도 남지 않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어떻게 남북 관계 개선의 장(場)으로 활용할 것인가도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다. 남북 선수단 합동 훈련이나 일부 종목 분산 개최 등 활용 가능한 카드를 꼼꼼하게 점검해야 한다. 북한은 장웅 IOC 위원 등을 통해 "2013년 완공한 마식령 스키장을 평창올림픽 경기 장소로 제공할 뜻이 있다"며 공을 우리 쪽으로 넘겼다. 에어리얼 스키(aerial ski) 등 시설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은 종목을 마식령에서 개최하는 방안을 '플랜B' 차원에서라도 검토하고 대비해야 한다.

"분산 개최는 없다"고 선언한 대통령의 발언을 뒤집을 수 없다는 이유로 손 놓고 있는 건 말이 안 된다. 흑자(黑字) 올림픽으로 만들기는 어렵다고 해도 최소한 의미 있는 올림픽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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