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종 지인들 "한때 예의 바른 사람이었는데 갈수록 변했다"

입력 2015.03.05 16:03 | 수정 2015.03.05 17:47

독도 문제에서 시작해 反美, 통일 문제에 관심…北과 비슷한 주장
2011년 북한 김정일 사망 때 덕수궁 앞에 분향소 설치 시도
전문가들 "김씨는 좌파 종북 세력"

 
종로경찰서 제공

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화협 주최 조찬 강연회에서 김기종(55)씨는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를 테러하기 위해 뛰어나가면서 누군가에게 유인물 10여장을 던졌다. 리퍼트 대사를 공격하고 나서 제압당한 뒤 그는 “유인물은 노정선 교수한테 있습니다. 노정선 교수님, 유인물 나눠주십시오. 지난 3월 2일 훈련 반대하면서 만든 유인물이 노정선 교수에게 방금 전달됐습니다”라고 소리쳤다.

노정선(70) 교수는 연세대 명예교수이자 한국 YMCA전국연맹 통일위원장이었다. 노 교수에 따르면 해당 유인물에는 ‘전쟁 반대’ ‘한미 군사정보 공조 반대’ 등이 큼지막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또 김씨 자신이 과거 굉장히 억울하게 당했었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고 한다.

노 교수는 “김씨는 흥사단·민화협 등에 나오는 등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했던 인물로, 원래 알던 사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씨의 행동에 대해 “놀랐다”고 했다. 노 교수 같은 김씨의 지인들은 김씨의 범행에 대해 “당혹스럽다”며 “김씨가 평소 그런 생각을 갖고 있긴 했지만 그렇게 과격한 행동을 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김기종씨가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주최 초청강연회에서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를 습격한 뒤 연행되고 있다. /뉴시스
그와 오랜 기간 알고 지냈다는 민족신문 김기백(63) 대표도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는 “김씨가 반미(反美) 운동 등을 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과격한 행동을 할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김 대표는 김씨와 15년 전부터 항일, 독도관련 운동을 하며 친분을 쌓았다.

김 대표는 “김씨가 몇해전까지만 해도 민족주의 운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독도 운동 전문가’로 꽤 이름을 날렸을 뿐, 반미 의식을 강하게 드러내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만난 김씨는 굉장히 깎듯하고 예의가 바른 사람으로, 광기 같은 것은 느낀 적이 없다”며 “일본과 관련된 일에는 흥분한 일이 많았지만 다른 일엔 그러지 않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김씨의 성향이 3~4년 전부터 급격히 변했다고 전했다. 그는 “자기가 활동한 내역을 문자로 보내고 그러는데, 가끔씩 보면 날이 갈수록 좀 심해지고 좀 변한다는 인상은 받고 있었다”며 “원래는 수염도 없었는데, 어느 순간 수염도 기르고 외면과 내면이 다 변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씨는 2008년 다수의 반미 집회에 참석해, 주한미군 철수·평화협정 체결 등 북한 입장과 비슷한 주장을 했다. 2009년 7월엔 용산 참사 시국선언에 참가하기도 했다. 독도 문제에서 시작해 반미와 통일 문제로 관심을 확장한 셈이다. 2011년 12월엔 북한의 김정일이 죽자 서울 덕수궁 앞에 분향소를 설치하려다 보수 단체 회원들과 싸우기도 했다.

김씨는 5일 테러 순간에도 연례 한미연합방어훈련인 ‘키 리졸브’를 겨냥해 “전쟁 훈련 반대”를 외쳤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은 “김씨는 재야에서 계속 활동한 인물로 종북세력으로 볼 수 있다”며 “그가 북한의 사주를 받았는지는 수사를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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