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95/FIRST & BEST] 高宗 '국가 부강의 꿈'… 1894년 최초 근대식 교동초등학교 開校

    입력 : 2015.03.05 03:00

    우리나라에 처음 생긴 근대식 초등학교
    우리나라에 처음 생긴 근대식 초등학교.

    '우리나라 초등교육이 여기에서 시작되다' '초등교육의 영원한 뿌리 영원한 교동'….

    서울 종로구 경운동 낙원상가 맞은편에 있는 서울 교동초등학교. 이곳 교정(校庭)엔 이런 내용의 비석이 곳곳에 서 있다. 운동장 한편엔 근대 문학가인 심훈의 '그날이 오면', 동요 작가 윤극영의 동요 '반달' 가사를 적은 노래비도 있다.

    갑오개혁 직후인 1894년 9월 18일 설립된 이 학교는 우리나라에 처음 생긴 근대식 초등학교<사진>다. 근대화 움직임이 본격화하던 당시 고종이 유력 가문 자제들에게 서구식 신(新)교육을 하겠다며 '관립 교동왕실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했다.

    이듬해 학령에 따라 서로 다른 교육과정, 체계화된 교과목 등 근대 서구식 학제(學制)를 도입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초등학교가 됐다. 이보다 앞선 1892년 미국 선교사 존스 여사가 기독교계 사립학교인 '영화학당'(현 인천 영화초)을 인천에 세우고 어린 여자아이들을 모아 가르쳤지만, 이런 의미에서 최초의 초등학교는 교동초로 보는 의견이 많다.

    ◇'아동 신체 발달에 맞춰…' 최초의 근대식 초등학교

    '소학교는 아동 신체의 발달에 감(鑑)하며 국민 교육의 기초와 그 생활상에 필요한 보통 지식 및 기능을 줌을 본지(本旨)로 한다.'

    갑오개혁 이듬해인 1895년 7월, 고종 황제는 이런 내용의 '소학교령'을 전국에 공포했다. '소학교령'이란 현재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소학교의 설립 목적과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 대상 아동 연령 등을 명시해놓은, 현재로 치면 '초중등교육법' 같은 규칙이었다.

    서구 열강의 이권 다툼에 시달리던 고종 황제는 근대식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국가의 부강이 국민 교육에 있다"는 조서를 수시로 발표할 정도였다. 그 시절 아동 교육이란 동네 서당에서 나이 든 훈장이 몇몇 아이를 모아놓고 한글과 한문을 가르치는 게 대부분이었고, 여자아이들은 아무런 교육 혜택을 받지 못했다.

    고종 황제가 소학교령을 반포하자, 본격적인 근대 학제가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독서, 작문, 산술, 체조, 역사, 외국어, 지리 등 다양한 과목을 나이에 맞춰 달리 배우게 됐고,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관·공립 초등학교도 우후죽순 생겼다. 미동, 장동(현 매동), 수하동 등 서울에만 소학교가 10여 곳 생겼고, 지방에도 50여곳 근대식 소학교가 설립됐다. 소학교 학제가 현재와 같은 6년으로 결정된 것도 이때다.

    '관립 교동왕실학교'도 소학교령에 맞춰 1895년 '한성사범학교부속소학교'로 이름을 바꾸고 근대 학제로 본격 개편했다. 당시 재학생이 100여 명에 이를 만큼 비교적 큰 규모였고, 학생들은 심상과(저학년·3년)와 고등과(고학년·2~3년)로 나눠 수업을 받았다.

    교동초는 일제강점기와 광복, 경제개발 시대를 거치며 부침을 겪는다. 광복 이후 많은 사람이 도심에 몰리면서 학생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63년엔 재학생이 무려 5250명(59학급)에 이르는 '초대형 학교'가 됐다. 교동초 김성녀 교무부장은 "당시 아이들을 수용할 교실이 모자라 오전·오후·야간으로 '3부제' 수업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고 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도심 공동화(空洞化)가 진행되면서 학생이 급격히 줄었다. 1990년대 이후 줄곧 전교생 100~150명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은 서울에서 가장 작은 '초미니' 학교가 됐다. 현재 교동초 재학생은 총 118명으로 한 학년에 한 학급꼴이다. 지난 2월(117회)엔 21명이 졸업했다.

    유명 졸업생도 많다. 2회 졸업생(1912년)으로 대한민국 4대 대통령인 윤보선, 3회 졸업생으로 윤치영 초대 내무부 장관 등이 있고, 소설가이자 신문기자였던 심훈(5회 졸업), 동요 작가 윤극영(17회 졸업) 등도 동문이다. 최근엔 영화배우 강수연씨와 YG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대표 같은 유명 문화 인사도 배출했다.

    입학생이 워낙 적다 보니 매년 통폐합 얘기도 끊이지 않는다. 특히 지난해 감사원에서 교동초 통폐합과 관련해 실태 조사에 나서면서 '대한민국 1호 초등학교가 사라지느냐'는 논란도 불거졌다.

    배창식 교동초 교장은 "교동초의 역사는 대한민국 근대 교육의 역사다. 학생 수 등 경제학적 논리로만 접근해선 안 된다"면서 "적은 아이들만으로 도심에서 우리 나름대로 작은 학교 문화를 일궈나갈 수 있도록 독려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중등 교육 시작은 美 선교사가 세운 배재학당

    근대식 초등 교육이 우리 정부 손에서 시작됐다면, 중등 교육은 이보다 더 앞선 시기에 외국인 선교사에 의해 시작됐다. 1885년 8월 서울 정동에 설립된 근대식 사립학교 '배재학당'(현 배재중·고등학교)이 우리나라 최초의 중등 교육기관이다.

    미국의 선교사 아펜젤러가 세운 배재학당은 설립 첫해 학생이 6명에 불과했지만, 이듬해 학생 수가 70여 명으로 늘었을 만큼 대단한 관심을 모았다. 주로 영어와 성경을 가르쳤지만, 설립 초기부터 과학, 수학, 체육 등 중학교(현 중·고등학교) 교과목을 체계적으로 가르쳤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 시인 김소월 등 유명 인사들이 동문이다. 비슷한 시기, 여학생을 대상으로 한 사학도 생겼다. 1886년 5월 미국 여성 선교사 스크랜턴 여사가 세운 '이화학당'(현 이화여고·이화여대)이다. 설립 첫해 단 1명이었던 재학생은 설립 3년 후 18명까지 늘었고, 우리나라 최고(最古) 여성 사학(私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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